인스타·틱톡에 밀렸던 '블로그' MZ세대 갈아타기에 '역주행'…그들은 왜?
"인스타·유튜브 과시적이고 자극적…내밀한 일기장 필요"
전문가 "SNS상 넓은 인간관계에서 피로도·무의미함 느껴"
- 한병찬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큰돈 아니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블로그처럼 소확성(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을 얻는 게 있을까요?"
지난 4일 오후 7시쯤 서울 관악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김종희씨(27)가 휴대전화로 연신 음식 사진을 찍으며 한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한 지 2개월째라는 그는 "일기장처럼 하루를 기록하고 광고로 돈도 버는 일석이조"라며 웃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 밀렸던 블로그가 MZ세대의 새로운 '놀이터'로 자리 잡고 있다. 단문 위주의 SNS에 익숙한 MZ세대가 긴 호흡의 줄글 위주인 블로그로 옮겨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13일 네이버가 공개한 '2022 블로그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약 200만개의 네이버 블로그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중 신규 블로그 이용자의 76%는 10~30대의 젊은 세대였다.
'엄빠'가 주로 쓰던 20년 블로그에 MZ세대들이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들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다.
◇"고물가에 외식비 아끼려…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
MZ세대들은 고공행진 하는 물가와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SNS에 대한 피로도가 블로그로 발길을 이끌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4월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직장인 김소진씨(29·여)는 "고물가 상황에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쓰는 외식 비용을 체험단 참가로 아끼려 시작했다"며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인플루언서 위주라 진입장벽이 높은데 블로그는 수요가 많아 안 유명해도 꾸준히 하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블로그를 통한 광고 수익도 MZ세대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루를 기록하며 부업으로 적지만 수익까지 들어오니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최근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직장인 이모씨(28·여)는 "우연히 1년간의 네이버 블로그 애드포스트(블로그 게시글에 있는 광고를 누르면 수익을 창출하는 제도) 수익을 확인했는데 작지만 수익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일상 기록을 남기면서 소소하지만 수익도 창출할 겸 다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SNS 자극에 피로…MZ세대 나만의 일기장 필요"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 식상함과 피로도를 느끼거나 나만의 일기장이 필요해 블로그를 시작한 MZ세대도 있었다.
대학생 황재영씨(24)는 "인스타·유튜브는 영상 중심의 과시적이고 자극적인 게시물이 많다 보니 피로도를 느낄 때가 많다"며 "텍스트 위주인 블로그는 얼굴과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아 익명성이 지켜져 내밀한 글을 쓸 때 좋다"고 말했다.
이어 "글자 수 제한 없이 쉽게 쓰는 온라인 일기장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지나치는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자주 게시물을 작성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이린씨(28·여)도 "블로그는 다른 SNS와 달리 공개·이웃·서로이웃·비공개로 공개 범위를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내밀한 글을 원하는 대상에게만 정리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다"고 전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MZ세대가 블로그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에 대해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이 잦아들며 MZ세대가 일상이나 생각을 글로 남기고 공유하는 일기장처럼 블로그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주간일기 챌린지'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부터 진행된 '주간일기 챌린지'를 통해 블로그가 느슨한 연대감을 좋아하는 1020세대들이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소통 플랫폼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챌린지에 참여한 이용자 중 55%가 20대일 정도로 20대에서 높은 반응을 얻었다.
이 관계자는 "블로그를 시작했다가 애드포스트 등으로 부수입이 나올 수 있는 것을 알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사용자분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MZ세대가 SNS상의 넓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와 무의미함을 느껴 자신을 더 드러낼 수 있는 블로그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MZ세대가 지나치게 넓은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 때문에 자신을 잘 알고 가까운 사람들과 일상을 깊게 공유하기 위해 텍스트 위주의 플랫폼을 이용하게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어 "자기 계발을 중시하는 MZ세대가 과시적이고 시각적인 SNS 플랫폼을 떠나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글쓰기를 택했고 소수와의 질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블로그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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