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겨울]⑪ "영하 15도에 히터도 못 틀어요"…한파와 싸우는 택배기사
"혹한기에도 난로 금지…방한마스크 써도 입 얼어붙어"
추위 속 16시간 고강도 노동에 진상 고객까지…"가족 보며 견뎌"
- 한병찬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체감온도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는데 진짜 걱정입니다."
지난 13일 오전 6시30분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서울 동남권 물류 센터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하던 택배기사 이문환씨(46)가 찬바람에 빨개진 코를 검지로 문지르며 말했다.
이씨는 20년 차 베테랑 택배기사지만 동장군은 그에게도 피하기 힘든 부담이다. 방한 마스크와 비니로 중무장한 그는 "방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입 쪽이 얼어 동상이 걸린다"며 고개를 돌려 지난해 한파 이후 빨갛게 변한 뺨을 보여줬다.
본격적 한파가 시작되자 실내에도 찬바람이 온몸에 스며드는 서울 동남권 물류 센터의 택배기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백색 형광등 조명 아래 입김이 나오는 물류센터 내부는 냉동고를 연상케 했으며 택배기사 대부분은 추위를 견디며 일하고 있었다. 작업자들은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양손을 비비고 연신 발을 구르며 한파와 싸우고 있었다.
오전 7시에 출근한 7년 차 택배기사 원모씨(59)는 "일할 때는 바쁘게 뛰어다니니까 오히려 땀이 나는데 쉴 때 땀이 식으면서 감기에 걸리기 쉽다"며 "지금도 옷이 축축해서 너무 춥다"고 말했다.
택배 상자를 차량에 적재하던 박모씨(66)는 사방이 뚫려 있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를 막지 못하는 구조를 지적했다. 그는 "허허벌판 같은 작업 환경에서 난로는 화재 위험이 있다고 금지하고, 히터는 없으니 밖이랑 안이랑 다를 것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날 찾은 물류 센터에는 찬 공기를 막는 스피드도어(자동문)나 강한 바람을 내뿜어 외부 공기 유입을 막는 에어커튼은 찾아볼 수 없었다.
10년 차 택배기사 형모씨(61)는 "회사에서 최대한 핫팩, 귀마개,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날이 워낙 추워서 만족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원영부 전국택배노조 경기지부장은 '뉴스1'과의 전화통화에서 "동남권 물류 센터는 실내니까 화재 위험이 없는 라디에이터나 온풍기를 설치하면 따뜻한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는데 사측이 전력만 탓하며 방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위와 함께 찾아오는 고강도 노동도 택배기사들에게는 큰 애로였다.
물류센터 한복판에 자리 잡은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1초에 3~4개씩 택배상자를 토해냈다. 밀려드는 상자더미 속에서 수십 명의 택배기사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택배를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특히 겨울철은 김치박스 등 무게가 나가는 택배가 많아 택배기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30년을 회사원으로 일하고 3개월 전 택배기사 일을 시작한 이모씨(54)는 "일 시작할 때가 김장철이라서 무거운 김치박스를 들다보니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면서도 "막내아들이 아직 대학생이라 졸업시키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죠"라고 볼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씨는 "오전 6시 출근했는데 까대기(분류작업)가 끝나고 오전 9시쯤 (여기서) 출발해 배달 시작하면 오후 9~10시쯤 퇴근할 것 같다"며 "집에 가면 취미생활은 꿈도 못 꾸고 피곤해서 바로 잠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화요일은 택배기사들에게 가장 바쁜 날이다. 이날 이씨의 할당량은 약 300개. 배달 한 건당 수수료 700~800원이 남는다. 화요일 외에는 하루 평균 200개를 배달한다.
현장에서 만난 택배기사들은 '진상 고객'도 문제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5년 차 택배기사 문모씨(36)는 요즘은 많이 괜찮아졌다면서도 "'무거운 짐을 왜 집 밖에 두냐'고 항의하거나, '택배를 빨리 갖다 달라'고 여러 번 독촉 전화를 거는 분도 가끔 계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남의 택배를 가져가시는 분들도 종종 있어서 난처할 때도 있다"며 "복도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곳에 가면 마음이 놓인다"고 덧붙였다.
오후 9시30분이 되자 C동의 컨베이어 벨트가 동작을 멈췄다. 기사들은 지친 듯 센터 입구에 주저앉아 담배 한모금에 겨우 휴식을 취했다. 적재를 마친 한 택배기사는 편의점에서 산 빵을 급히 입에 욱여넣고 차에 탑승했다.
동남권 물류 센터는 택배만 모였다 흩어지지 않았다. 설렘을 배달하는 택배기사들도 모였다 각지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물류센터의 냉기를 뒤로 한 채 택배차가 하나둘 물류 센터를 벗어나 목적지로 향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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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또 겨울이다. 없는 이들에게 겨울은 더 혹독하다. 경기는 바닥을 향하고 있는데 물가마저 치솟고 있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 빚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막막하다는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기침체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어쩌면 민생을 살펴야 할 이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