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비켜주는 게 관행"…112 시스템 '먹통' 또다른 이유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112 시스템 '구멍'…3년전 교훈 소용없었다
경찰청 "상황관리관, 업무 태만 확인…대기발령 후 수사의뢰"
- 김정현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의 112 시스템이 사실상 '먹통' 상태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이어진 시민들의 '압사' 경고는 무시됐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경찰청장은 대통령보다도 늦은 시간에 상황을 보고 받았다.
경찰 안팎에서는 3년 전 '한강 몸통 시신 사건' 계기로 112 당직체계가 전면 개편됐지만 '관행'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야간에 상황을 총괄해야 하는 112 상황관리관은 자리를 비웠고 대응은 물론 보고체계마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 상황관리관 사고 발생 84분 후에 112 상황실 복귀
4일 경찰에 따르면 참사 당일 서울지방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의 상황관리관 당직자는 류미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총경)이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있었어야 할 류 총경은 해당 시간에 본인의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 총경은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24분이 지난 시점인 오후 11시39분에야 112치안종합상황실 팀장(경정)으로부터 사고 보고를 받고 상황실로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관리관의 '지각'은 고스란히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으로 이어졌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자신의 대리를 맡은 상황관리관이 아니라 오후 11시36분에야 서울 용산경찰서장의 현장 첫 보고를 받았다.
'치안 상황 보고'도 다음날인 30일 오전 0시2분에 경찰청에 올라가 윤희근 경찰청장도 다음날인 30일 오전 0시14분에야 경찰청 상황1담당관의 전화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전해들었다.
소방당국의 보고를 통해 오후 11시1분에 사고를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경찰 수뇌부들의 사태 파악이 늦어진 셈이다.
◇ 3년전 사고로 서울청 당직 시스템 강화됐지만…
현재 서울경찰청은 일과 시간 이후로는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을 대리해 총경급 경찰관을 '상황관리관'으로 두고 112 상황실을 24시간 동안 운영하는 당직 체계를 갖고 있다.
평일 일과시간(오전 9시~오후 6시)에는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이 112신고 접수 및 지령, 초동조치에 대해 지휘한다. 상황관리관 당직자는 야간 및 휴일 근무 시 발생한 사건사고 등에 대해 서울경찰청장과 상위 기관인 경찰청 상황실에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휴일의 경우, 상황관리관 당직자는 주간근무 전반(오전 9시∼오후 1시)과 야간근무 전반(오후 6시∼오전 1시)에는 상황실에, 주간근무 후반(오후 1시~오후 6시)와 야간근무 후반(오전 1시~오전 6시)에는 본인의 사무실에 대기하도록 돼 있다.
류 총경은 당직 지침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 상황실에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자신의 사무실에 있다가 결국 사고 소식을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류 총경이 업무를 태만히 수행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류 총경을 대기발령하고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힌 상태다.
이같은 경찰 당직 시스템은 지난 2019년 '한강 몸통 시신 사건'에서 서울경찰청에 자수하러 온 장대호를 돌려보낸 사건을 계기로 전면 개편된 체계다.
경찰은 당시 중간관리자인 총경급 경찰관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 부실 대응을 막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경찰청의 야간·휴일 민원처리 종합대책에 따르면 야간 및 휴일 당직시 발생하는 모든 민원 및 당직 상황에 대해 상황관리관에게 보고해 처리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또 이전까지는 주말에만 총경급 경찰관이 상황관리관을 맡는 근무체계를 평일 야간까지로 확대하기도 했다.
◇ 불편할까봐 자리 비웠다? '관행' 앞에 시스템 개편도 무용지물
하지만 이같은 경찰의 근무체계 개편은 '관행' 앞에서 무용지물이 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사실 직원 당직자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에 상황관리관은 무전기만 지참하고 상황실을 비우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관행으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탓에 참사가 일어나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참사 당일도 사고 발생 3시간41분 전인 오후 6시34분부터 사고 발생 시간인 오후 10시15분까지 총 11건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진 상황관리관이 상황실을 비워 이같은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서울청 차원에서는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간은 상황관리관 당직자가 상황실에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야간근무 전반'(오후 6시~오전 1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일 상황관리관 당직자였던 류 총경이 상황실이 아닌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감찰을 통해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평일 야간 '총경 근무'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여전히 평일 야간에는 총경급 경찰관이 아닌 경정급 경찰관이 상황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경찰청은 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과 서울용산경찰서장이었던 이임재 총경을 대기발령하고 수사 의뢰하기로 한 상태다.
Kri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