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9안심콜' 도입 14년…장애인 99%가 못 쓴다
반지하 사고 줄 잇는데 복잡한 인증절차로 0.6%만 이용
관악구, 직접 동의 구해 장애인 정보 소방서 제공 '주목'
- 정연주 기자
# 2021년 11월 서울 관악구 대학동 다세대주택 화재로 고층에서 홀로 살던 지체장애인 A씨가 구조를 받지 못하고 숨졌다.
# 2022년 8월 서울 은평구 역촌동 빌라 4층에 거주하던 시각장애인 B씨는 아래층에서 난 불을 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다른 주민은 모두 대피한 상황이었다.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최근 서울지역 집중호우로 관악구 반지하주택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숨지는 등 각종 재난·재해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장애인 사례가 늘고 있다.
대피에 취약한 이들의 정보를 미리 파악해 신속하게 구조하기 위한 소방 서비스가 이미 14년 전 개발됐지만, 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전체의 0.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소방청의 '119안심콜'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6월말 기준 1만5959명이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264만5000명)의 0.6% 수준으로, 99.4%의 장애인은 119안심콜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쓰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지역별 119안심콜 이용 현황을 보면, 서울 지역 장애인 5680명으로 가장 많이 등록돼 있고 경기 3328명, 경남 1153명, 제주 1061명 순이다. 세종시가 41명으로 가장 적었다.
지난 2008년 9월 소방청이 도입한 '119안심콜'은 장애가 있거나 고령자·독거노인 등에게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급대원이 질병이나 환자의 특성을 알고 신속하게 출동, 맞춤형으로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다.
119 신고 시 구급대원에게 안심콜 수혜자의 개인 병력정보가 표출되며, 보호자에게는 환자의 응급상황 발생 사실과 이송병원 정보 문자 메시지가 자동으로 전송된다.
그러나 장애인이 자신의 정보를 여러 인증 절차를 거쳐 직접 등록해야 하는 데다, PC로만 신청할 수 있는 등 절차적 어려움으로 지난 14년 동안 장애인 이용 실적은 저조했다. 대리인 신청 역시 여러 서류를 준비해야 해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소방청 관계자는 뉴스1에 "개인정보보호법상 한계가 있고 인증 절차가 복잡해 장애인들이 많이 쓰지 않고 있다"며 "간편하게 신청이 가능하도록 서비스 개편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 개인정보보호법 충돌…관악구, 직접 발품 팔아 '돌파구' 마련
이런 상황에서 서울 관악구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관악구는 지난해 11월 대학동 지체장애인의 안타까운 화재 사망 사고를 계기로 초기에 자력 대피가 어렵고 인명피해 발생 위험이 높은 장애인 구조에 대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대학동 화재 현장에서 한 구조대원이 '거동이 어려우신 분이었다는데, 미리 알았다면 제일 먼저 그곳부터 갔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듣고 구 차원에서 이를 개선할 방법을 수소문했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그 과정에서 119안심콜의 저조한 이용률과 개인정보보호법 문제를 알게 됐고, 신속한 구조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적사항을 소방서에 미리 제공하는 것이 위법인지 법률 자문까지 했다.
그러나 자문 결과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는 의견과 저촉되지 않는다는 상반된 의견을 받으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해당부처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법령 위반'이란 입장을 관악구에 전달했다.
실제 지난 2019년 경상북도 소방본부가 같은 이유에서 경북도 내 시·군을 통해 3만여명의 장애인정보시스템을 구축했으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지적으로 운영을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관악구는 시간과 인력 한계에도 관내 장애인을 직접 만나 정보 제공 동의를 구하고 관악소방서에 일일이 정보를 넘기는 대안을 택했다. 지자체와 소방기관이 협력해 피난약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첫 사례다.
관악구 내 장애인은 총 2만200명(그중 피난약자 장애인 1만8735명)으로, 구는 현재 3620명의 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다. 매년 장애인 4000명에 대한 정보 제공 동의를 받는 것이 관악구의 목표다.
구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도 장애인 등록 시 정보 제공 동의를 받는 방안을 건의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jy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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