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에 끌려와 친구를 묻었습니다"…'선감학원' 유해 발굴 첫삽
진화위 '인권유린 아동 유해 150여구 매장' 선감도서 개토제
"노동력 착취와 폭력에 생명 잃어…탈출하다가도 목숨 잃어"
- 원태성 기자
(안산=뉴스1) 원태성 기자 = "부모님도, 집도 있는데 열세살에 영문도 모른채 잡혀왔습니다."
26일 선감학원 동료 피해자들의 유해 시굴 작업을 바라보던 안영화씨(70)는 씁쓸한 표정으로 현장을 바라봤다.
안씨는 "여기서 탈출하다 바닷물에 떠밀려온 아이를 직접 묻은 적이 있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씨의 형으로, 또 다른 동생과 선감학원에 끌려온 안영식씨(74)도 당시 학대 정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안영식씨는 "한반에 20명정도 있었는데 한 명만 잘못하면 전체가 기합을 받았다"며 "밥을 굶기고 매질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3형제 모두 이곳에 갇히는 바람에 당시 3~4세였던 막내동생은 세 형의 행방을 모른채 지냈다"며 "우리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갇혀있는 동안 온갖 고초를 다 겪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26일 오전 11시 유해 매장 추정지인 선감묘역(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시굴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은 30일까지 닷새간 이뤄지지만 연장될 수 있다.
시굴은 전체 매장 추정지의 약 10%에 해당하는 900㎡에서 진행한다.
시굴 작업은 유해가 40㎝ 정도 깊이에 있을 것으로 예상돼 굴착기 등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삽과 호미를 이용한 수작업으로 한다.
진화위는 피해자 유해와 유품이 발견되면 인류학적 감식을 통해 성, 나이, 사망시점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만약 선감학원 아동 유해가 확인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전면 발굴을 권고할 방침이다. 진화위는 선감학원 인권침해의 진실규명을 10월 중 결정할 예정이다.
이날 시굴이 이뤄진 선감묘역에서는 2016년 나무뿌리와 엉킨 아동 유골과 어린아이 고무신 한 켤레가 발굴됐다. 경기도의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을 위한 사전조사 계획수립 용역' 보고서(2018년)에 따르면 여기에 유해 150여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진실화해위의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 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용역 결과 전국의 인권침해 현장 중 유일하게 유해 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조사됐다. 유해가 발견되면 국내 인권침해 사건 가운데 첫 발굴 사례가 된다.
이날 개토제에는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 김영배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 소설가 김훈이 참석해 피해아동을 위한 추도사를 했다. 선감학원 피해자와 경기도 인권담당공무원, 진화위 관계자 등 30여명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시굴에 앞서 사과, 배, 생선 등을 올린 제사상을 차리고 피해자들의 넋을 기렸다.
김영배 대책협의회 회장은 "선감학원에서 노동력 착취와 폭력으로 많은 소년이 생명을 잃었으며 배고픔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탈출하다 또 많이 목숨을 잃었다"며 "선감학원의 암매장 유해가 조속히 발굴되도록 관계 당국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선감도의 경기창작센터에서 글을 썼다는 김훈 작가는 "(선감학원 사건도 모른채) 그 자리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송구하다"며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오직 사실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이제 화해의 단추가 잡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설립된 아동집단수용시설 선감학원은 1982년까지 운영되며 부랑아를 강제 연행해 격리 수용했다. 시설에 수용된 인원은 최소 4691명이다.
원생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거나 폭력, 고문 등 인권 침해를 당했는데 경기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수용자의 85.3%가 13세 이하이고 10세 이하도 44.9%를 차지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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