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집서 자취 감춘 '깻잎', 집에선 파절이 대신 부추무침"

'금값' 채소에 달라진 풍경…식당주인도 "가격 못 올려" 한숨

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배추를 고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배추 상품 1포기 평균가격은 8748원으로 이달초(7009원)보다 24.8% 높다. 추석 이후 주요 농축산물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에도 배추만 상승세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2.9.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김동규 김규빈 기자 = #1. 직장인 A씨(49)는 최근 직장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기본인 '깻잎'은 없고 상추도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종업원에게 깻잎을 요구하자 5장 정도만 '몰래' 가져다 줬다. 종업원은 "깻잎값이 너무 올라서 달라고 하시는 손님에게만 제공한다"고 털어놨다.

#2.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주로 집에서 해결한다. 가격이 너무 올라 외식하는 것이 부담돼서다. 최근에는 파절이도 부추무침으로 대체했다. 대파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채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소비자는 물론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고물가 시대를 견디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지만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20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에 따르면 깻잎(100g)은 5731원으로 1년 전 2695원 대비 2배 이상 폭등했다. 대파도 1단에 3327원으로 1년전 1992원보다 보다 67% 올랐다.

◇채소가격 최대 2배 이상 올라도 가격 1000원 올리기 힘들어

채소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급등했음에도 자영업자들은 소비자 눈치를 보면서 가격 인상에 주저하는 모습이다. 오른 원가만큼 가격을 올리면 가뜩이나 줄어든 손님이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날 오전 방문한 서울 공덕동의 한 삼겹살집에서 만난 60대 사장 이모씨는 "고기는 팔수록 적자고 채소도 깻잎, 양파, 오이, 당근, 대파까지 안 오른 게 없다"며 "이대로 물가가 지속되면 원가부담이 커져 자영업자들은 다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 식당 기준으로 1인분(200g) 생오겹 가격을 지난 5월 14000원에서 15000원으로 1000원 올렸는데 이는 원가 상승분보다 훨씬 적게 올린 것"이라며 "손님들이 깻잎이나 오이 등을 더 달라고 하면 주기는 주는데 부담이 상당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특히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같은 식사 메뉴는 사람들이 점심시간 등에 많이 찾는 메뉴라서 가격을 못 올리고 있다"며 "솔직히 가게 입장에서 대응할 만한 여력이 없어서 정부가 10월에 물가를 잡는 대책을 내놓는다고 하니 그것만 바라볼 수 없다"고 말했다.

3년 전 서울 노원구에서 삼겹살집을 창업한 30대 청년사장 이모씨도 "가게를 열었을 때의 초심인 좋은 가격에 좋은 고기를 손님들에게 내놔야 한다는 마음이 요즘 원가상승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며 "고기도 고기지만 채소는 리필을 많이 요청하는데 손님들이 추가로 달라고 할 때마다 부담이 매우 크다"고 푸념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불리는 치킨과 김밥집도 채소 가격 폭등에 신음하고 있다. 서울 선릉역의 한 치킨집 사장 이모씨는 "통닭집은 원래 양배추 샐러드를 같이 줘야 손님들이 좋아하는데 지금 양배추 값이 상태 좋은 거 기준으로 포기당 4000원"이라며 "이는 작년 대비 2배 이상 오른 건데 양배추를 안주면 손님들이 가게를 다시 방문 안 할 거 같아서 정말 고민"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김밥집 알바생 김모씨(28)도 "김밥은 기본적으로 시금치 우엉 등 여러 채소를 다 집어넣어야 하는 만큼 재료를 조금이라도 빼면 손님들이 금방 알아챈다"며 "현재 한 줄에 3500원에 판매를 하는데 이것도 비싸다고 하는 손님이 있어 사장님이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모델들이 '삼겹살데이'를 맞아 국내산 삼겹살을 소개하고 있다.. 2022.3.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소비자도 채소 먹는데 부담…공급 확대 기다릴 뿐

채소가격 급등은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있다. 경기도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40대 김모씨는 1년 전부터 가족 외식을 안하고 있다. 대신 국내 주요 마트의 온라인 핫딜(싸게 파는 기회)을 활용해 집에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김모씨는 "웬만한 삼겹살집 가도 1인분에 1만2000원은 훌쩍 넘고, 서울 쪽에 가면 최고 1만8000원 이상인 곳도 있는데 4인분 시키고 이것저것 먹다보면 10만원은 훌쩍 넘는다"며 "온라인으로 대형마트나 소셜커머스 등의 핫딜을 자주 이용해서 집으로 시켜 가족들과 함께 외식 분위기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40대 정모씨도 "출근해서 점심은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먹는데 몇 년 전보다 확실히 채소 반찬이 줄어든 느낌"이라며 "배추 한 포기가 만원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더 큰 문제는 채소값 급등을 극복할 만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채소 공급이 늘면서 자연스레 가격 하락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실장은 "현재 채소 가격 상승에 대처할 수 있는 거시적인 정책 뿐만아니라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에서 10월 피크론(정점)을 말한 만큼 내달부터 주요 원자재의 공급 여력 상승, 채소 비축물량 개방 등으로 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d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