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건강]위 생리학의 시작…200년 전 구멍 난 위장을 들여다보다
복부 총상 입은 캐나다 남성 위 구멍 통해 소화 과정 최초 입증
남성 살려낸 군의관, 10년간 200회 실험에 남성 이용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인간에게 인체만큼 궁금한 것도 없다.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사체 해부를 시작해 16세기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가 '사람 몸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첫 해부학 책을 새 인쇄 기술로 편찬해냈다. 그러나 해부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작동을 멈춘 인간의 몸이다. 살아 움직이는 인체 내부를 보는 것은 인간의 금지된 꿈이었다.
그런데 약 200년전 19세기 캐나다와 미국 국경 지역에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위액과 소화 과정을 관찰하는 일종의 생체 실험이 이뤄졌다.
캐나다의 모피상이었던 20대 청년 알렉시스 세인트 마틴(1802~1880)은 1822년 총기 오발 사고로 총알이 옆구리를 관통했다. 인근 초소에 있던 미군 군의관인 윌리엄 보몬트(1785~1853)가 달려왔을 때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세인트 마틴의 상처를 치료한 군의관은 "구멍을 통해 폐와 위의 일부분이 보였다. 어떻게 숨이 붙어있는지 믿을 수 없었다. 위에 난 구멍은 검지가 들어갈 정도로 컸고 아침 식사로 먹은 음식이 구멍으로 빠져나왔다"고 기록했다.
위의 소화과정은 네덜란드의 과학자인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1577~1644)가 최초로 화학적 과정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는 없었다. 총상으로 살점이 날아가고 갈비뼈까지 몇 대 부러졌지만 세인트 마틴은 살아났고 17일 후 위장은 원래 기능을 회복했으며 구멍은 그대로인 채 위에 난 구멍 가장자리가 아물었다.
위에 구멍난 채로 건강히 살아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의사인 보몬트에게 소화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보몬트는 줄에 음식물을 매달아 세인트 마틴의 위 속으로 밀어넣었다가 시간이 지난 뒤 끄집어내서 얼마나 소화됐는지 관찰하는 등의 실험을 시작했다.
보몬트는 1833년까지 10년 넘게 약 200회의 실험을 시행했다.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기도 했지만 보몬트는 세인트 마틴이 글을 잘 못 읽는 것을 악용해 하인으로 고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때문에 세인트 마틴은 달갑잖지만 실험에 응했고 실험 기간이 아닌 동안은 하인으로서 집안일을 했다.
보몬트는 세인트 마틴의 위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모아 51개의 결론을 담은 책을 1838년에 출간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채소가 고기보다 느리게 소화된다' '우유는 소화 과정 초기에 응고된다' '위 안에서 일어나는 음식물을 휘젓는 동작이 소화를 돕는다' 같은 사실이 세인트 마틴의 위 관찰로 확인되거나 새롭게 발견됐다.
특히 위액에 염산 성분이 있다는 다른 과학자의 가설을 확인하고 위벽에서 위액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큰 업적이었다. 세인트 마틴은 하지만 보몬트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부대에 배치된 동안 캐나다로 도망간 후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보몬트는 1837년 세인트루이스 의대 교수가 되었고 세인트 마틴을 데려오려고 노력했지만 세인트 마틴은 완강히 거부했다.
보몬트가 1953년 사망한 후 27년 후인 1880년에 세인트 마틴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들은 시신이 썩을 때까지 장례를 미뤘다. 의학도들이 해부하겠다고 그의 시신을 강탈할까봐 두려워서였다. 인류 최초의 위 생리학 업적에 막대하게 기여했지만 의학 실험 대상으로 살았던 삶이 그 자신에게는 얼마나 넌더리나는 거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ungaung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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