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짓밟은 용산 마을 '둔지미'를 아시나요

김천수 용산문화원 실장 집필…일제 문서 최초 발굴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표지(용산구 제공)ⓒ News1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마을 둔지미를 재조명한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를 1000부 발행했다고 20일 밝혔다.

둔지미 마을사는 2014년 발행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의 후속작이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2년간 집필했다.

전작이 러일전쟁(1904~1905) 시기부터 6.25전쟁까지 주로 용산 ‘기지’의 역사를 다뤘다면 이 책은 그곳에 살던 ‘사람’에 주목한다. 사진, 지도 등 시각자료도 한층 풍부해졌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둔지방’(屯之坊, 둔지산이 위치한 현재의 용산기지와 그 주변 일대)이 신설된 18세기부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까지다.

책은 7장으로 이뤄졌다. 1장에서 인문지리적 관점으로 둔지방의 기원과 변천을 다루고 2장에서 둔지방 주민 천흥철의 준호구(准戶口, 조선시대 호적)를 통해 당대를 재구성한다.

천흥철은 훈련도감 소속 직업군인으로 둔지방 하부 행정조직 중 하나인 ‘지어둔계(之於屯契)’에 거주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지어둔계가 둔지미계로 명칭이 바뀌었고 이곳 ‘둔지미 마을’은 러일전쟁 이후 일제 군기지 건설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3,4장은 일제의 ‘용산 군용지 수용 문건(1906)’에 대한 상세 분석이다. 김 실장이 아시아역사 자료센터에서 최초 발굴한 이 문건은 일본 방위성이 소장한 일제시기 기밀문서 ‘밀대일기(密大日記)’ 중 하나로 전체 61쪽 분량이다. 수용 예정지 내 가옥, 묘지, 전답 현황을 조사·기록했다.

문건에 포함된 ‘한국 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에는 신촌(新村), 대촌(大村), 단내촌(壇內村) 등 옛 둔지미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상세히 나와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5,6장은 2차에 걸친 일제 군기지 조성 과정과 주민 이주 과정을 담았다. 1908년 경 군용지로 강제 수용된 둔지미 신촌에는 1909년 일제의 용산총독(통감)관저가 들어섰다. 1912년에는 해당 건물이 일본군사령관 관저로 용도가 바뀌었고 지금은 미군 드래건힐 호텔(DHL)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일제는 제1차 용산기지 공사(1906~1913)를 끝내기 전부터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전략 차원으로 조선 내 상주 사단 설치를 추진한다. 본국에서 군사를 교대 파견하는 기존 ‘주차군(駐箚軍)’ 체제로는 병력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일제는 제2차 용산기지 공사(1915~1922)에 돌입, 또 한 번 주민 강제 이주를 실행했다. 현 용산가족공원 일대에 자리했던 둔지미 대촌, 단내촌 주민들은 이때 보광동(보광리) 지역으로 터전을 옮겼고 마을이 있던 곳에는 1921년 대규모 연병장이 들어섰다.

책 마지막 장은 보광동에 거주하고 있는 둔지미 마을 후손들의 증언을 소개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이 편찬한 ‘보광동 사람들, 보광동(2008)’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과 용산기지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며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 참고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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