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세계 최대 '구름 생성 실험실'…기후변화 해법 찾는다[르포]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지상에서 눈·비 생성 과정 관찰
기상 현상 비밀 연구…가뭄 해소용 강우 유도 등에 응용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귀포=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인근 보안시설 안에 들어서자 풍선같이 생긴 높이 5m의 '쇠공'이 드러났다. 마치 SF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볼 법한 이 거대한 구조물은 대기의 구름 형성과 강수 과정을 재현하는 '대형 구름물리실험챔버'로, 높이만 5m에 달한다.
챔버(체임버) 내부는 온도와 기압을 정밀히 조정할 수 있는 이중 냉각 구조로 설계됐다. 실험을 시작하자 '구름 씨앗'으로 불리는 아이오드화은(요오드화은, AgI)을 연소시켜 챔버로 주입했다. 수십초 만에 챔버 내부 온도는 -75도까지 떨어졌고, 모니터 화면에 부채꼴과 별 모양의 얼음 결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주완 국립기상과학원 구름물리연구팀장은 "지금 이 안에 구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이 구름 씨앗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는지 확인할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차 박사 말처럼, 단순히 구름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기후 변화와 기상 현상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구름물리실험챔버는 기상청이 2020년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2년 8월 운영을 시작한 시설이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이 챔버는 세계에서 9번째, 아시아에서는 2번째로 구축됐다. 최신 챔버라 실험 규모는 세계 1위 규모(21㎥), 생성할 수 있는 빙정 크기도 세계 최대다.
일본의 챔버(3m)보다 크기가 약 70% 커 대규모·중장기 실험에 적합하다. 103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됐다. 그만큼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이 시설에 대해 갖는 기상학적, 산업적 기대는 크다.
이 시설은 '구름 챔버'와 '에어로졸 챔버'로 구성돼 있다. 연소실에서 만든 구름 씨앗을 에어로졸 챔버에 잠시 보관하다가 구름 챔버로 주입과 동시에 기온을 떨어뜨리면 구름이 생성되는데, 눈·비가 생성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대기 상층의 다양한 빙정(얼음 결정) 형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차 팀장은 "20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구름 방울이 실제 빗방울로 성장하려면 약 100배 커져야 한다"며 이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기후와 기상 모델링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다른 챔버들과 비교할 이곳이 가진 또 다른 강점은 다양한 실험 조건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찬 구름의 빙정핵 역할을 하는 요오드화은이나 드라이아이스, 따뜻한 구름에서 활용되는 염화칼슘, 염화나트륨 등을 모두 실험할 수 있다. 챔버 내에 별도 장비를 넣어서 구름 속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은 단순히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는다. 차 팀장은 "산불 예방과 가뭄 완화, 도시 열섬 현상 완화 등 현실적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는 구름 씨 물질을 활용한 인공 강우 기술이 활발히 도입되고 있는데, 이 챔버는 그런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기상청은 향후 이 시설을 활용해 새로운 구름 씨 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상업화해서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 시장에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챔버 내에서 진행된 또 다른 실험에서는 구름 생성의 효율을 평가하기 위해 구름 씨 물질로 개발 중인 친환경 소재를 활용했다. 점토나 셀룰로오스와 같은 자연 소재는 환경 오염을 줄이고 보관 및 운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기상청은 이 챔버를 활용해 기후변화 대응과 기상 재해 예방 기술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다. 산불 예방용 강수 실험, 가뭄 해소를 위한 강우 유도 실험 등 다양한 기상 응용 연구도 추진한다.
국제 기상·기후 연구 협력의 허브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기상청은 세계기상기구(WMO)와 협력해 국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해 챔버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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