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쓴 플라스틱 빨대, 오늘 생선튀김에서 나왔다 [황덕현의 기후 한 편]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생태계 교란 추적
혈액·모유에서 미세 플라스틱 검출…기후변화에도 악영향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의 한 장면. (뉴스1DB)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정부가 최근 플라스틱 빨대에 대해 정책 기조를 바꿨다. 단속을 강화하고, 과태료를 매기겠다는 강경책에서 한발 물러나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고물가', '고금리', '소상공인 부담'을 이유로 들었고 환경단체는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언급하며 '정책 후퇴'를 지적했다. 내년 부산에서 개최될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를 앞두고 민망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일었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양새다.

정부의 발표 뒤 먼저 든 생각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다.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는 것은 우선 '인간을 위한 것'이지만 거시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주변 모든 생태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바다로 유출된 플라스틱 문제가 큰데, 우리는 아직 내륙에서 버리는 플라스틱을 얼마큼 어떻게 줄여나갈지 합의를 하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운 것이다. 크레이그 리슨 감독의 해양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가 떠오른 이유다.

'플라스틱 바다'는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비롯된 해양 오염과 생태계 교란을 추적했다. 돌고래는 주둥이에 비닐봉지가 걸려서 울부짖으며 죽어갔고, 어류를 주식으로 하는 바닷새의 배 속에는 비닐봉지부터 그물, 스티로폼 등 약 200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끼어 고통 받던 바다사자의 모습은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류가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밥상 위로 돌아오는 과정도 좇았다. 해양 플라스틱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열과 파도에 의해 쪼개지면서 보다 작은 조각이 됐다. 유엔(UN) 보고서에 따르면 바다에는 대략 51조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타고 올라가 '최상위 포식자'인 인류의 밥상에 올랐다. 위, 소장, 대장을 거쳐서 빠져나가거나 내장기관에 축적되는 걸로 알려졌던 미세 플라스틱은 지난해에는 인간 혈액 속에서, 또 모유 속에서 최초로 검출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지 6년 만의 일이다.

사실 미세 플라스틱은 생선구이나 튀김 같은 바다 먹거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유타대 연구팀이 지난 2020년 게재한 조사 논문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은 비·바람에 의해서 분해돼 민물이나 대기 중에도 존재하고 있다.

황덕현 사회정책부 기자. /뉴스1 ⓒ News1

미세 플라스틱 등 플라스틱 문제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미세 플라스틱이 산호초에 산호병을 불러서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해양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해빙에 달라붙어 태양열을 흡수시켜 북극의 얼음을 더 빨리 녹게 하고, 태양열을 반사하는 얼음이 그 역할을 상실하는 이른바 '되먹임 현상'으로 인해 기후위기를 가속하기도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난립하는 플라스틱을 줄여서 인간과 환경의 피해를 줄이자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골자다. 이는 내년 중 완성하려고 하는 '플라스틱 협약'(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과 궤를 같이한다. 플라스틱 협약 최종안의 윤곽이 나오는 게 부산에서 열릴 5차 협상위원회인 것이다.

내년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부산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어떤 플라스틱 관리·감축 대책을 내놓게 될까. 안타까운 상황에 답답한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가 마음이 어두워졌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