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 아냐, 미등록종"… '목재 킬러' 흰개미 동거 시작

열대·아열대에 살았지만…국내 유입 추울 땐 뿌리따라 땅속으로
"날개 단 흰개미, 본격 번식하며 서식지 확장 가능성" 우려 커져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발견된 흰개미(환경부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외래종이 아니라 이제 '미기록종'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기후변화와 도시열섬효과, 수도권 특유의 목조주택 배치 등이 외래종의 국내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야겠죠."

부산대 생명자원과학대학 학장인 박현철 생명환경화학과 교수는 19일 환경부가 밝힌 흰개미류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호주 등 해외를 비롯해 북촌 한옥마을의 흰개미를 십수년간 추적 관찰해온 국내 흰개미 연구 권위자다.

흰개미 출몰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기록상 1920년대에 처음 서식이 확인된 흰개미는 지난 2010년대 초반부터 간헐적으로 발견·신고돼왔다.

그러나 그간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견된 적 없던 '마른나무흰개미과' 흰개미가 강남 한복판에서 발견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국내에서 발견되던 흰개미는 마른나무가 아닌 물기를 머금은 나무를 위주로 갉아먹었는데, 물기 정도와 상관없이 닥치는대로 나무를 갉아먹을 종과 동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국내에서는 6000종 넘는 전체 흰개미 중 일본흰개미 등 일부 종(種)만 서식이 발견돼 왔다. 이는 한반도가 흰개미가 서식하기에 유리하지 않은 기상·환경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북반구에서 흰개미는 북위 45도 아래에 생존·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역에 포함되지만 -30도부터 영상 40도를 오가는 큰 기온차에 적절한 서식지는 아닌 것으로 조사·연구됐다. 우리나라보다 적도에 가까운 열대·아열대 기후 지역에서 생존·번식할 수 있기에 한반도에 살 이유도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도시의 기온이 주변지역보다 더 뜨거운 '열섬 현상'이 심화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따뜻한 남부보다 대규모 목조 주택이 밀집한 서울이라는 조건이 따뜻한 남부보다 새로운 흰개미 종 서식에 유리하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실제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지난 2021년 학술지 네이처클라이밋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도시가 증가하는 열의 영향으로 더 더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새로 국내에 유입된 걸로 추정되는 흰개미에게 12~3월의 영하권 추위는 문제되지 않는다. 박 교수는 "흰개미들은 겨울철 추위가 찾아오면 나무기둥 밑동이나 심부로 숨는다. 나무에 붙어있을 경우 뿌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지표면보다 기온이 높은 지하 10~50m에서 겨울을 버티다 날이 풀리면 다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후변화 때문에 점차 겨울이 짧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흰개미들의 겨울나기는 더 쉬워진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실제 유희동 기상청장도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제2회 국가현안 대토론회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을 경우 2100년에 겨울은 현재 107일에서 39일로 줄어들고, 여름은 97일에서 170일로 2배 길어질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발견된 흰개미는 마른나무흰개미과(Kalotermitidae) 크립토털미스(Cryptotermes)속에 속해있다. 국내에서 서식하는 게 공식 확인된 게 없기 때문에 학명 외 정식 이름도 없다. 박 교수는 국내 유입된 새로운 흰개미의 이름을 붙이고, 서식 형태나 분포 정도를 확인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은 이번에 발견된 흰개미의 '날개' 때문이다. 앞서 국내에서 발견된 흰개미는 날개 없는 형태가 많았다. 날개 달린 흰개미가 나타났다는 것은 국내에 유입된 흰개미가 국내 환경에 적응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번식하면서 서식지를 넓히기 위한 개체로 등장했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한편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은 지난 17일 나타난 강남 논현동 흰개미에 대해 18~19일 긴급 방제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아직 흰개미의 국내 유입 경로를 파악하지 못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추후 역학조사를 통해 유입 경로 등을 확인할 방침"이라는 설명이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