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학과로 입학해 국문과로 졸업한다"…군산대의 도전

'학년·인원·횟수' 제한 없는 '3無 전과'로 학생 선택권 강화
수요자 중심 교육시스템 개편 후 충원율·취업률 동반 상승

학생과 대화하는 이장호 국립군산대학교 총장. (군산대 제공)

(군산=뉴스1) 권형진 기자 = 정부가 올해 '무전공'(전공자율선택) 선발을 밀어붙인 건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융합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과·전공 간 벽을 허물고 학생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그 결과 올해 6.6%였던 무전공 선발 비율이 2025학년도에는 28.6%로 확대된다.

정부에 앞서 2년 전부터 선도적으로 '무전공 선발 확대'라는 혁신적 실험에 나선 지역대학이 있다. 전북 군산시에 있는 '국립군산대'다. 2022년 취임한 이장호 군산대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모집단위 광역화를 추진해 국립대 최초로 '무(無)학과 모집'을 실시했다. 군산대는 올해 36%인 무전공 선발 비율을 내년도에 50%로 확대한다.

이 총장은 "정부는 융합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무전공 확대를 추진했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모집단위 광역화를 추진한 것"이라며 "그 바탕에는 수요자 중심의 대학으로 가자는 방향이 있다"고 말했다.

취임 때부터 '모집단위 광역화'와 함께 학생 중심으로 학사 구조를 개편한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 총장 취임 당시 83.3%(2022학년도)로 떨어졌던 신입생 충원율이 이듬해(2023학년도) 95.6%로 껑충 뛰었고, 2024학년도엔 99.4%까지 상승했다. 막판에 등록을 포기한 10명 때문에 100%를 못 채웠다고 한다. 올해 신입생 모집(2025학년도)에서는 충원율 100%를 자신한다.

군산대 제공

'전과 FREE'와 '아카데믹 어드바이저'로 '무전공 확대' 뒷받침

학생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군산대의 무전공 선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2개의 '강력한 무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전과 프리'(FREE) 제도와 '아카데믹 어드바이저'(AA·Academic Advisor) 제도다.

무전공 선발이 입학 단계에서 학생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벽을 허무는 것이라면 '전과 프리' 제도는 입학 후 재학 단계에서 학생 선택권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바로 군산대만의 독특한 제도인 '3무(無) 전과'에 있다.

대부분 대학이 전과 제도를 운용하지만 허울뿐인 측면이 있다. 2학년 이상이어야 허용한다거나 정원의 20% 이내로 전과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는 식이다. 횟수도 대부분 재학 중 한 차례만 허용한다.

군산대는 바로 이 3가지, '학년·인원·횟수' 제한을 없앴다. 학생들은 재학 중 언제든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학과(간호학부 제외)를 선택해 이동할 수 있다.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김 모 씨도 그런 경우다.

김 씨는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했다고 한다. 3학년 2학기 때 교양과목을 들은 후 꿈꾸던 길을 찾았고, 4학년 때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해 4점대 학점을 유지하고 있다. 김 씨는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전북 군산시 국립군산대학교 정문 야경. (군산대 제공)

'아카데믹 어드바이저'는 이럴 때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돕기 위한 제도다. 학생의 진로, 학업,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부터 대학 생활, 학위 취득 요건 등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김효중 군산대 교육혁신처장은 "1학년 2학기 때부터 원하는 전공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입학하기 전부터 학업 역량이나 전공을 탐색할 수 있는 역량, 기초적인 수학 역량을 진단해서 일차적으로 전공 탐색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모듈형 융복합 학위과정…입학이 아니라 공부한 대로 학위 취득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무기는 지난해 2학기 도입한 '모듈형 융복합 학사학위 과정'(MCD)이다. 2개 이상 전공을 결합한 융합 교육과정으로 취업 때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MCD는 기존의 단일 전공 체계를 넘어 학생 개개인의 학업 목표와 진로를 고려해 맞춤형 학위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혁신적 학사 운영 방안이다. 전공 탐색, 융합, 심화 모듈로 구성돼 학생들이 자신만의 학문적 경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오정근 군산대 기획처장은 "입학한 대로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 대로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을 도입했다"며 "조선공학과로 입학해도 국어국문학이 좋다면 '전과 프리' 제도로 원하는 대로, 공부하는 대로 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장호 국립군산대학교 총장. (군산대 제공)

'MD 기반 채용 연계 공유 전공' 도입…'특성화 단과대학' 개편

수요자에는 학생뿐 아니라 기업도 해당한다. 지난해에는 '마이크로 디그리(MD·단기 교육과정) 기반 채용 연계 공유 전공'도 도입했다. 산업체가 교육과정 수립과 수업 운영, 현장실습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올해 9월에는 수요자 중심의 특성화 단과대학으로 교육체계를 개편했다. 컴퓨터소프트웨어 특성화대학, 해양·바이오 특성화대학, 경영 특성화대학 등 3개의 특성화 단과대학과 자율전공대학(자율전공학부)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특성화 단과대학은 단과대학 특성화를 통해 전문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무전공 제도를 적용해 단과대학별로 모집단위를 광역화해 학생을 선발하고, 역시 입학 후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특정 학과에 학생이 쏠리고 비인기 전공이 축소되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코티칭'(Co-teaching) 제도를 마련했다. 코티칭은 서로 다른 전공의 교수가 수업을 함께 진행해 학제 간 융합을 실현하는 제도다. 어떤 전공으로 쏠리든지 학생들의 기본교육과 전공교육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도입했다.

수요자 중심으로 대학 체질을 바꾼 군산대의 노력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가동 중단, 한국GM 공장 철수 등 영향으로 2022년 55.5%까지 곤두박질했던 취업률이 2023년 61.6%로 상승했다. 1년 만에 6.1% 포인트(p) 오른 것. 상승 폭이 전국 대학 평균 2.1%의 3배에 육박한다.

이 총장은 "학생, 기업 등 수요자를 정확하게 바라본다면 군산대의 교육시스템이 선택받을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융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앞으로도 학생 중심의 교육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jin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