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기술자' 조장하는 글로컬대학 평가 [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공정성에 집착한 나머지 타당성을 희생한 선정평가
보고서 속 변화 아닌 현장의 실질적 변화 평가해야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학 사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정책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글로컬대학 30'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출범한 이 사업은 2026년까지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제시할 30개 대학을 선정해 지역 발전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육부는 이 사업을 통해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이를 2025년부터 도입되는 라이즈(RISE) 체계와 연계해 지역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사업 신청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방대학은 선정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타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통합이나 연합, 학사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 그리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포함한 혁신안을 제출했다.
이러한 변화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대학 사회에 일견 새로운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책의 실행 과정과 사업계획서에서 대학들이 제안한 내용의 실효성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 사업이 과연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지역대학 혁신을 통한 국가 균형 발전을 목표로 대학 간 통합과 연합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2023~24년 선정된 사업단 중 부산대-부산교대, 강원대-강릉원주대 등 6개 사업단이 통합을, 동아대-동서대, 대구보건대-광주보건대 등은 연합을 주요 전략으로 제시하며 대학 간 협력을 통해 혁신 모델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 간 통합은 마치 사업 선정의 통과 의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대학 간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유사 학과 통합, 중복 업무 재배치, 연구기관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업 선정이라는 외재적 요인에 의해 대학 간 통합이 단기간 내 졸속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통합 과정에서 구성원 간 합의 부족, 이로 인한 학내 갈등, 유사·중복 학과 구조조정의 난항 등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통합 과정에서 열위에 놓인 대학 구성원들의 권익 침해와 이에 따른 소외감은 통합 이후에도 안정적 운영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글로컬대학 30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통합이라는 외형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통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효과를 선정 과정에서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 이상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구조적 재편이 이뤄질 때, 비로소 선정된 사업단이 지역 대학과 지역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혁신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글로컬대학 30 사업단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평가 방식은 평가의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타당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대면 평가 시 사업단 관계자와 평가위원 간 직접 대면을 차단하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한 것은, 공정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재 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웃푼'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지적된 적이 있다. 평가위원들은 대학이 제출한 사업계획서 전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세부 평가 영역별로 역할을 분담해 개별 영역만 평가하고 점수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종료했다.
이러한 방식은 평가위원들이 사업 계획의 전체적 맥락과 상호 연계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단편적인 평가에 그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며, 결국 사업의 총체적 타당성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한계로 작용했다. 마치 사람의 눈, 코, 입을 따로 평가해 외모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세부 항목의 점수를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으로는 전체 사업의 타당성과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방식은 평가의 목적과 본질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재정지원사업 평가에서 공정성과 타당성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둘 중 하나만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전체 평가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는 보완적 수단으로 활용하되, 이를 지나치게 강조해 평가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글로컬대학 30 사업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공정성과 타당성을 균형 있게 확보하기 위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또한 현행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선정 평가는 공정성을 강화한다는 명목 아래 대규모 사업임에도 현장 방문 평가를 생략하고 단기 합숙 형식으로 특정 장소에서 진행되는 대면 평가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이뤄지는 집체 평가만으로 대학이 제출한 사업 계획의 신뢰성과 타당성, 그리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는 공정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평가의 타당성을 심각하게 희생하고 있는 또 다른 사례로 지적될 수 있다. 이런 평가 방식은 대학들이 소위 '보고서 작성 기술자'를 고용해 대학 발전보다는 선정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춘 과장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행태를 조장하기도 한다.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결과적으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부풀려진 보고서가 난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글로컬대학 30 사업의 본래 목적 달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은 철저히 정량적 지표 위주로 설계된 성과관리 체계다. 현재 글로컬대학 30 사업단의 성과관리 지표는 취업률, 지역 정주율, 무전공 선발 비율, 공유 교육과정 수 등 정량적 지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물론 대학의 변화를 평가하려면 정량적 지표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고서 중심의 형식적 평가를 넘어 개혁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려면, 정량적 변화 이면에 숨겨진 실질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정성적 평가도 있어야 한다. 정량적 지표만으로는 대학이 추구하는 혁신의 내용과 지속 가능성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컬대학 30 사업과 같이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서는 보고서 이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토론식 평가와 현장 방문 평가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보고서 속의 변화가 아닌 대학 현장의 실질적 변화를 평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평가와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필수 요건이다.
대학 재정지원사업 평가의 목적은 단순히 점수를 매겨 누가 더 나은가를 평가하는 데 있지 않다.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그로 인해 대학과 지역 사회가 실질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대학과 지자체 등 이해당사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평가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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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