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묵념 후 인증하라'는 보훈부…"지나친 전시행정"

유엔참전용사 기념일 추모 이유로 학교에 묵념 요청
"이미 현장서 애국심 교육해…전체주의처럼 느낄 수도"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 제공

(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국가보훈부(보훈부)가 전국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유엔참전용사 기념일(11일) 오전 11시에 용사들에 대해 묵념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구체적 시간을 지정하고, 묵념 사진을 보내라는 게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의원실에 따르면 경기·대전 등 초·중등학교에선 1일 보훈부로부터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받았다. 공문 자체는 전국으로 전송됐으나 모든 학교가 공문을 받지는 않았다.

보훈부는 공문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추모한다"며 11일 오전 11시 부산 방향으로 1분간 묵념하고, 13일까지 묵념 사진을 서식에 맞게 송부하라고 요청했다. 요청 이유에 대해선 "전국민적 추모 및 기념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보훈부는 2007년부터 추모의 날을 기념했다고 강 의원실에 전했다. 실제로 앞서 2020~2023년에도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추모와 묵념의 시간을 가져달라며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별도로 시간을 지정하거나 사진을 보내라는 요구는 없었다. 올해 요청이 이전과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학교 현장과 교육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공문을 받아본 초등교사 A 씨는 "묵념할 수는 있지만 사진 촬영까지 해 보내는 것은 지나치게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라며 "오전 일과 중인 11시에 (묵념)하고 촬영까지 하는 것은 교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중등교사 B 씨는 "호국보훈의 달에 하는 것도 아니라 다소 당황스럽다"며 "호국보훈의 달에 어느 정도 학사 일정에 (호국) 취지를 반영하는 터라 이처럼 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초등교사이기도 한 정혜영 서울교사노동조합 대변인은 "현재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서도 애국심에 대해 배우고 있다"며 "일선 교사들은 (보훈부의 요청을) 전체주의처럼 느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강 의원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아닌 형식주의적 접근은 기념일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킨다"며 "진정한 추모는 획일적 구시대적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추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보훈부는 강제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참여에 있어 강제성은 전혀 없었다"며 "증빙자료 제출은 자율적으로 묵념에 참여하고 촬영된 사진 등 자료가 있으면 보내 달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grow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