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역할, '자율과 규제' 이분법으론 안 된다[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대학 자율 확대하되 유형·특성 따라 자율 종류·정도 차별화
'자율형 사립대' 도입…등록금 인상 등 더 큰 자율 부여해야

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을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자율성 확대'다. 이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필요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가급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정책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사회적 비판을 핵심 역할로 하는 대학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자율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교육부는 표면적으로는 언제나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대학 재정지원과 평가를 매개로 실제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번 윤석열 정부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겉으론 자율…실제론 재정지원·평가 매개로 자율성 제약

2023년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는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무전공제(전공자율선택제)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2023년 이후 비수도권 지역의 거의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고 있는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을 위해서는, 교육부가 강조하는 무전공제 선발의 확대가 필수 조건이라는 점은 대학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글로컬대학30 사업 대상이 아닌 수도권 지역 사립대학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전체 모집인원의 25% 이상을 무전공 선발로 확대하는 대학에 인센티브(추가 재정 지원)를 지급하겠다고 하는 등 무전공제 선발 확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사실 무전공제는 입학할 때 전공을 정하지 않고, 대학에서 충분한 학습과 경험을 해 보고 난 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라는 좋은 취지를 가진 제도다. 하지만 이런 좋은 취지가 무색하게, 현장에서는 교육부의 강력한 무전공제 확대 의지에 직면해 심지어 예술계 대학, 직업교육 중심 대학들조차 무전공제 도입의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경학과, 조리학과, 보철학과와 같은 직업교육 중심 학과의 경우 무전공 제도를 통해 전공 선택을 미루는 것은 직업교육 학과에 필수적인 현장 실습과 기술 습득을 지연시키고, 학생들이 진로에 맞는 실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렇듯 대학의 유형이나 특성에 관계없이 무전공 제도를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획일적으로 밀어부치는 정부의 추진 방식은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대학설립준칙주의'처럼 무분별한 자율성 확대도 역효과

그렇다고 해서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자율은 선, 규제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점도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무분별한 대학 자율성의 확대가 때로는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고등교육 체제의 중장기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대학의 자율 확대가 항상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부 시절 도입된 '대학설립준칙주의'는 당시 통계청의 인구 추계상 학령인구가 대폭적으로 감소할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논의를 주도하던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도입됐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대학 설립의 기준을 대폭적으로 완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수도권 지역에 우리 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대학이 설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이 시기 설립된 대학들은 충분한 수익용 기본재산 없이 학생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자생력 없는 대학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들 대학은 2010년대 이후 학령 인구 급감에 따라 대부분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현재 정부가 부실·한계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 맡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시장주의자가 주장하는 단순한 자율과 경쟁 확대 논리가 교육체제 운영의 절대 원칙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획일적 규제 대신 '자율형 사립대' 도입, 더 큰 자율 부여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자율을 확대하되, 대학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 자율의 종류와 정도를 차별화하는 보다 정교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모든 대학에 동일한 자율성을 부여하기보다는 대학별 역량과 처한 상황적 조건에 맞도록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고, 정부가 어떤 곳에,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개입할 것인지를 심도깊게 고민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예술계나 직업교육 중심 학과가 대부분인 대학에는 무전공 제도의 예외를 허용하고, 무전공 선발을 확대 도입하는 대학들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제공과 맞춤형 지도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즉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대학들이 학생들의 시행 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장치를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대학에 동일한 규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대학의 역량과 여건에 따라 '자율형 사립대학'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지정된 대학들에는 학사제도 운영, 등록금 인상 등의 영역에서 보다 큰 자율을 부여해 이를 기반으로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줄 필요도 있다.

자율과 규제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대학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각자 수립한 고유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정부는 적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필요한 지침과 지원을 제공한다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자율을 확대하거나 규제를 철폐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 자율의 확대가 학생과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정부가 항상 치열하게 고민하고, 여건에 맞게 정책을 수정해 나가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율과 규제의 경직된 이분법적 관점으로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