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고시원·호텔 투숙까지…"어떻게든 대치동에 와야 했다"

[대입 '지역비례'로 뽑자]②입시경쟁서 시작한 국가경쟁력 약화
강남3구 일반고 졸업생 4% 불과…서울대 진학생은 12%

편집자주 ...한국은행이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입시경쟁 과열 해결책으로 제시하면서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한은이 교육문제까지 발 벗고 나선 것은 서울, 특히 강남3구에 집중된 교육열이 수도권 집중, 집값 상승, 저출산, 국가 성장 잠재력 약화로까지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한은의 제안은 학생의 잠재력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거주지역 효과가 서울 주요 대학 진학을 결정한다는 교육계의 오래된 숙제와도 맞물린다. 그러나 주요 대학이 단순히 지역별 학생수에 비례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뉴스1은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나오게 된 현실과 기대 효과, 보완점 등을 5회로 나눠 점검한다.

한 시민이 서울 시내의 한 고시원 앞을 지나고 있다. /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의 '학사'(學舍) 는 대한민국 입시 1번지 강남구 대치동과 인연이 깊다. 선릉~한티역을 세로로, 선릉~삼성역을 가로로 하는 1.2㎞×930m 사각형 안에는 약 25개의 학사가 들어서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들이 이곳에 들어온다. 학사에서는 수험생에게 음식 제공, 방 청소, 학원 셔틀버스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험생들은 한 달에 약 130만 원을 주고 학원과 학사를 오가며 1년간 구슬땀을 흘린다.

대치동 인근 10㎡(약 3평)짜리 고시원, 학원 근방 20㎡(약 6평)짜리 반지하에도 학생들이 들어온다. 학원비만 매달 150만~200만 원이 나가는데, 130만 원에 달하는 학사까지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학생들이다. 이들이 지불하는 금액은 매달 약 50만~60만 원이다. 대학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많은 학생들이 좁은 공간과 더위, 장마를 버틴다.

최근에는 수능을 앞두고 몇 달간 방을 잡고 장기 투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대치동에서 수업을 듣고 싶은데, 주변에 원룸이 없어 수험생 가족이 에어비앤비나 호텔에서 1~2달 장기 투숙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큰돈을 지불하고, 열악한 상황을 선택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공부 환경' 때문이다. '1타 강사' 강의, 양질의 교육자료,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학습 분위기는 경쟁과 교육열로 1년 내내 뜨거운 대치동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전경 ⓒ News1 양동욱 기자

한국은행이 발간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는 한 비서울 지역보다 서울대 진학률이 9.6배 더 높았다. 또 전체 일반고 졸업생 중 4%에 불과한 강남3구는 서울대 진학생의 12%에 달했다. 우수한 사교육 환경이 성과를 만들었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대치동의 입시 시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커진 의대 열풍과 맞물려 초등학교 입시 준비반이 학원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영어 조기교육을 위한 유아영어학원(영어유치원) 등도 우후죽순 생기는 상황이다. 올핸 의대 정원 확대에 맞춰 예비 중1 초등 의대반을 6월 개강하고, 학년별로 나눠 의대 대비 커리큘럼을 구체적으로 공지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강남3구 유치원의 거의 절반(49.2%)이 초등학교 선행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을 당겨서 한자와 분수까지 가르치는 유치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입시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겐 대치동으로 가야 할 이유가 명백하다. 그렇게 더 나은 사교육 환경을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서울에서 대학에 다닌 학생들은 수도권에 터를 잡는다. 입시 경쟁부터 수도권 집중, 집값 상승, 저출산,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이렇게 굴러간다.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내세운 정부 기조와는 별개의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치동 학원 관계자는 "지난해 킬러문항 배제 기조로 물수능을 예상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변별력이 높은 불수능이었다"며 "수능이 어려우면 학생들은 불안감에 사교육을 찾고, 올해는 의대 증원까지 겹쳐 더 사활을 걸고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치동 재수종합반을 다닌 조 모 씨는 "동네를 떠나고 싶진 않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서울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악순환을 초래하는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24번의 대입 제도 개편을 단행했으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한국은행은 "사회문제 완화를 위해 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기준·전형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지역별 선발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grow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