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대신 '훈계'한 학폭 조사관…"객관적 조사 안 지켜져"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 올해 3월 첫 도입
조사관 상당수 외부인…전문성 강화·학폭법 개정 필요

푸른나무재단 직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학교 폭력을 멈출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7.2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올해 3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새로 도입된 가운데 조사관이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교폭력 변호사·교원단체 등에선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들을 훈계하고 처분을 언급하는 조사관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담조사관 제도는 교사가 담당하던 학교폭력 사안 조사 업무를 퇴직 경찰·교원 등 외부인에게 넘기는 제도다. 지난해 불거진 교권 문제에 업무 경감 차원으로 도입됐다.

조사관은 학교폭력의 1차 조사를 전담한다.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정확한 사실 파악이 불가능해 매뉴얼에 충실한 조사관의 태도가 강조된다.

교육부가 만든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조사관은 학생을 직접 지도하거나 훈계할 수 없다. 또 교직원·학생·학부모와의 언쟁이나 감정적 대응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학교폭력 여부를 임의로 판단하거나 조치 수준을 언급해선 안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원칙이 아직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천대웅 변호사(천대웅 법률사무소)는 "피해 학생을 향해 '이 정도로 뭔 학폭이야'라 하거나 가해 학생에게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등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전문 박상수 변호사는 "조사관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고 아이들에게 화해를 권유하기도 한다"며 "학교폭력 사건을 조사하던 조사관이 학생들에게 '이 사건엔 가해자만 있고 피해자는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계는 갑작스러운 제도 도입으로 교육 분야 밖에서 조사관을 뽑아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관계자는 "조사관의 상당수가 교육계 밖에서 들어와 감정적 대응을 삼가던 교육계의 흐름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 관계자는 "학교폭력 신고엔 '기분 나쁜 말을 했다' '나를 밀었다' 같은 사소한 경우가 많다"며 "투입된 지 얼마 안 돼 이 같은 문제를 사소히 여겨 취지와 어긋난 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반년도 시간이 지나지 않은 만큼 교육 강화로 이들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 변호사는 "전문성을 높여 조사관이 절차를 정확히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사소한 사건이 학교폭력으로 분류되지 않도록 학교폭력법에 명시된 '학교폭력'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현행법은 학교폭력을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는 학생 대상 '위협'으로 바라보는데, 이 정의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학교폭력을 너무 폭넓게 정의해 일상적 사건도 학교폭력으로 접수된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grow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