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무더기 사직, 일부 벌써 '현장이탈'…정부 '진료유지명령' 맞대응

빅5병원 전공의 사직서 무더기 제출 시작…지방서도 가세
정부,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 등 비상진료대책 가동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2.1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강승지 정지형 기자 =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화가난 전공의들의 파업이 가시화되면서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빅5 병원을 비롯해 전국의 수련병원 곳곳에선 사직서가 무더기로 제출되거나 이미 제출 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정부는 전국 221개 수련병원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내리고 가능한 비상 진료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지난 16일 금요일 오후 6시 기준 전체 전공의 525명 중 35%가 사직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병원은 주말과 이날 제출된 사직서까지 집계되면 그 수는 절반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도 무더기 사직서 제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17일 "이제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며 살아가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던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의 4년차 전공의이자 의국장인 A씨는 "소청과 1~3년차 사직서는 일괄적으로 19일 교수부 열면 바로 전달 예정이고,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글을 동료들에게 공유했다.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현재 소청과 전공의는 A씨를 포함해 10명이다. 당초 20일 오전 6시로 예고된 '병원 출근 중단'이 하루 앞당겨 실행에 옮겨진 셈이다.

세브란스병원 전공의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도 이날 사직서를 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주취자와 폭언, 폭언이 난무했던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도 이제 끝이네요. 현장 따윈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의 꿈, 미련없이 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면서 "저는 돌아갈 생각 없습니다"고 썼다.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복지부가 발표한 사직서 제출 병원 명단에서도 빠져 있었다. 당시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 기준 전공의 수 상위 100개 수련병원 중 23개 병원에서 7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와 병원 내부 집계가 다른 이유는 전공의가 사직서를 냈다고 해서 곧바로 제출 처리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사직서를 이미 쓴 전공의들도 있지만 사직서를 낸 즉시 '사직서 제출'이 되는 게 아니라 의국장, 과장 등 거쳐야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집계가 간단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아직 파악이 안 됐거나 주말간 집계가 되지 않았던 사직서까지 더해진다면 이날 복지부가 오후에 발표할 예정인 집계 수치는 715명에서 훨씬 많은 수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빅5 병원뿐만 아니다. 19일 들어 충북대병원, 청주성모병원, 대전성모병원, 을지대병원, 아주대병원, 강릉아산병원 등에서도 전공의들이 속속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2024.2.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에 복지부는 이날 오전 각 수련병원에 담당자들을 파견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몇 명인지, 이 중 현장에서 이탈한 인원을 파악 중에 있다.

만약 업무에서 손을 뗀 것이 확인된 전공의에게는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자격정지,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문자와 문서를 동시에 발송하는데 문자 발송 동시에 도달의 효과가 있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처분에 들어가게 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오전 열린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브리핑에서 "반드시 송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정부는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다 점검했다"며 "각각에 대한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방법에 대한 법적 검토도 마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귀를 반짝 하고 다시 업무에서 이탈하는 것도 명령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또 중수본은 이날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 '진료유지명령'도 발령했다. 박 차관은 "진료유지명령은 집단행동을 하기 직전이나 하려고 예고됐을 때 '나가지 말라'는 명령으로 의료법 제59조 1항에 따라 복지부 장관이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조항에 근거해 나간 것"이라며 "말 그대로 현재 하고 있는 진료를 유지해 달라는 명령이고, 위반하게 되면 상응하는 처벌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진료 마비를 막기 위해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을 수립해 소방청 등과 협력해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중증도에 따른 환자 배정을 위한 이송 지침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중앙응급상황실을 20일부터 확대 운영하고, 광역응급상황실 4개소가 3월부터 가동될 수 있도록 한다. 12개 국군병원 응급실도 일반인에 개방한다.

정부는 지난 6일 설치한 중수본 중앙비상진료대책실을 오는 20일부터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전국 응급의료기관과 공공병원 등의 비상진료 현황을 모니터링한다. 지자체와 관계부처는 각자 사전에 수립한 비상진료대책에 따라 소관 의료기관의 비상진료 상황을 관리하게 된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경증·비응급 환자는 대형병원에서 종합병원 등으로 연계·전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황 장기화로 진료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되는 경우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인력을 주요 의료기관에 지원할 예정이다.

또 병원급을 포함한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서 대상 환자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오전 의료계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집단행동이 본격화한다면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만성·경증환자가 의료기관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집단행동 기간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총리는 의료계를 향해 집단행동을 멈춰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한 총리는 "의사 단체가 지금이라도 집단행동 계획을 철회하고 국민과 의사 모두를 위한 정부의 의료개혁에 동참해 주신다면 더 빠르고 더 확실하게 의료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의대생들도 전공의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40개 의과대학의 대표 기구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업무를 이탈하기로 한 20일 동맹 휴학을 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충북대 의대생 190여명은 19일부터 의학과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학교 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 한림대 의대생은 지난 15일 본과 4학년 학생들이 모두 1년간 휴학하기로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알렸지만 아직 휴학계는 제출되지 않았다.

이에 교육부는 동맹휴학은 휴학 사유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날 오전 긴급 총장 회의를 열기도 했다.

지난 17일 오후 원광대 의대생 160여명은 단체로 휴학을 신청했지만 지도교수의 설득 끝에 19일 모두 휴학계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