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이러려고 尹 사건 넘겨받았나[기자의눈]
- 이밝음 기자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6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일임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34일, 공수처가 검찰과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지 19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때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수사는 모든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대부분의 문제는 수사 초반부터 언급됐던 내용이다. 내란죄 수사권 논란이나 공수처의 인력 부족 등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했단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 경찰과 기소권이 있는 검찰, 공수처가 합동수사본부를 꾸렸다면 없었을 논란이기도 하다. '이럴 거면 공수처가 왜 윤 대통령 사건을 넘겨받은 거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며 출석요구에 불응하더니 체포영장에도 응하지 않았다. 대통령경호처도 같은 이유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았다. 공수처는 한 차례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뒤 "대통령경호처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고, 협조할 걸 기대했다"고 밝혔다. 체포영장만 들고 가면 관저 문이 저절로 열릴 거라고 기대했던 셈이다.
체포영장 발부 역시 공수처가 중앙지법이 아닌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하면서 논란이 됐다. 주거지 관할이 서부지법이란 이유를 들었지만 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이려 '판사 쇼핑'을 한 것 아니냔 의혹이 제기됐다.
공수처는 경찰과 협의 없이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했다가 위법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곧바로 철회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공수처에 계속 윤 대통령 사건을 맡겨도 괜찮은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공수처는 제발 공부 좀 하라"며 "검찰도 하기 힘든 수사를 공수처가 욕심을 과도하게 내서 덤비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수사기관이 피고인 측에게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물론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중앙지법에서 영장을 발부했어도 대통령 측은 다른 이유를 들어 수사에 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잡음이 나온다고 해서 윤 대통령에게 면죄부가 주어지거나,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비상계엄 선포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현직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도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수처도 "중대한 사건 수사에 작은 논란의 소지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조직의 존재감을 보여주려다 오히려 폐지론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공수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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