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가습기살균제' SK케미칼·애경산업 인과관계 다시 재판(종합)

2심 유죄→대법 파기환송…"옥시와 '공동정법' 성립 인정 안돼"
"주원료 성분 전혀 달라…질환 가능성 '공동 인식' 여지 없어"

서울 서초구 대법원. 2023.10.6/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인체에 해로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대표 등 관련자들이 다시 재판받게 됐다. 앞서 형이 확정된 옥시레킷벤키저 사건과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오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함께 기소된 다른 관계자들도 다시 재판받는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관계자들은 메틸클로로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하면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98명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로 2019년 2월 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2016년 특별수사팀을 꾸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을 원료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을 기소했다. 신 전 대표는 2018년 1월 징역 6년이 확정됐다.

1심은 CMIT·MIT와 피해자들의 질환 사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제품 복합사용 및 단독사용 피해자그룹과 CMIT·MIT 간의 인과관계,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며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금고 4년을 선고했다. 또 복합사용 피해자그룹에서 옥시 사건과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해, 이 부분에서의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들과 관련사건(옥시) 피고인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했고, 이를 전제로 공소시효 완성에 관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며 "피고인들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원은 먼저 "관련사건 피고인들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의 주원료는 PHMG 등으로 주원료의 성분, 체내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활용하거나 응용하여 개발·출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련 사건 피고인들과 이 사건 피고인들이 상대방 가습기살균제의 개발·출시를 인식했다거나 그에 관해 서로 의사를 연락했음을 인정할 만한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어떤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관련 사건 피고인들이나 이 사건 피고인들이 각 가습기살균제에 모두 결함 내지 하자가 존재한다는 사정, 그것이 누적·결합돼 복합사용 피해자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거나 그에 관한 묵시적 의사연락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이 주원료의 차이를 알고 구매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 등을 들어 옥시와 SK케미칼·애경산업의 공동정법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도 봤다.

대법원은 "그러한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한다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심에서는 복합사용 피해자들의 질환과 SK케미칼·애경산업 제품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더 심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정범 성립이 인정되지 않아 공소시효가 완성된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 가능성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11년 4~5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 출산 전후 산모 8명이 폐가 굳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입원한 뒤 4명이 숨지며 세상에 알려졌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올해 11월 30일 기준 피해 지원 신청·접수자는 7977명으로 그중 1883명이 사망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