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바뀐 '통상임금' 판례…대법 '고정성' 폐기한 이유는?

'소정근로 대가' 개념에 집중…"법정수당 예측 가능성 높일 것"
통상임금 기준으로 수당·퇴직금 결정…임단협 등 갈등도 예상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3.10.6/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대법원이 11년 만에 통상임금 판례를 변경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고정성'에 따라 통상임금의 범위가 부당하게 축소되고 연장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통상임금이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수당·퇴직금 규모의 기준이 되는 만큼, 향후 단체협약 체결과 취업규칙 변경 등의 과정에서 큰 변화가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9일 오후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종전 판례가 제시한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판시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바탕으로 통상임금을 정해 왔다.

쟁점이 된 임금의 '고정성'이란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 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돼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조건이 붙거나 조건에 따라 임금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 재직 중인지, 근무 일수나 실적을 충족했는지 등의 조건이 붙으면 고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근로자가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 1항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한 시간급, 일급, 주급, 월급,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정하고 있을 뿐, '고정성'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고정성'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비롯한 법령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며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소정 근로의 정기적·일률적 대가'라는 개념에 집중해 근로자가 수령할 법정수당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도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임금의 본질인 소정 근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요청, 통상임금 판단의 예측 가능성을 모두 충족하며 다양한 임금 유형에 정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이라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차별구제 청구 소송 등 상고심 사건 선고에 참석해 있다. 2024.12.19/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임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통상임금을 재정립하는 것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새로운 법리는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된다. 다만 같은 쟁점으로 대법원과 하급심에서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다투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된다.

한국노총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소급 적용을 하지 못하도록 한 부분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법문에 규정돼 있지도 않은 '고정성' 요건을 폐기하여 해석상의 논란을 종식했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재계는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의 재무 부담을 가중할 뿐 아니라, 기존 판례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은 노사 합의를 무효로 만들어 소송전 등 예기치 못한 갈등과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영향에 대해 "기업은 인건비 수준을 정할 때 기존 대법원판결 내용에 따른 통상임금 요건을 믿고 법정수당 등을 예측하여 임금인상률을 정했는데, 앞으로는 다시 임금체계를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업에서 이번 대법원 판례를 반영해 임금체계를 변경함에 있어 단체협약 체결, 취업규칙 변경 등의 과정에서 노사 갈등 등 많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