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발달장애인에 '투표 보조용구' 제공해야"…1심 뒤집어

1심 "선거법 관련 근거 없어" 각하…2심 일부 승소
발달장애인 측 "쉬운 투표용지 갖게 돼 너무 행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삼거리에서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2심 판결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정보와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그림투표용지 제공을 촉구했다. 2024.12.1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발달장애(지적·자폐)인이 원활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정당 로고, 후보자 사진 등을 이용한 투표 보조 용구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이은혜 이준영 이양희)는 18일 발달장애인인 박경인·임종운 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1심은 공직선거법에 관련 근거가 없다며 각하 판결을 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이 지난날 이후 시행되는 공직 선거(대통령·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에서 원고들이 요구할 경우 발달장애인 등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투표 보조 용구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서 투표 보조 용구는 정당 이름, 후보자 기호·이름 등을 알 수 있도록 정당 로고, 후보자 사진 등을 이용한 기구를 말한다.

다만 그림투표를 전면 도입하라는 원고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직선거법 157조6항에 따르면 시각·신체 장애로 직접 투표할 수 없는 사람은 가족이나 직접 지명한 2명을 동반해 투표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내용이 없어 중앙선관위는 선거 지침으로 발달장애인의 투표를 보조해 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 지침에서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내용을 별도 공지 없이 삭제했고 이에 두 사람은 발달장애인의 선거 참여를 지원하는 국가 의무를 저버렸다며 지난 2022년 1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을 위해 선거공보물과 공약서를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고 후보자의 사진이 포함된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발달장애인들을 대리하는 정제형 변호사는 이날 선고 뒤 "국가가 발달장애인에게 투표권 보장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인정했다는 게 큰 성과"라며 "투표 보조 용구보다 더 나아가 문자를 읽을 수 없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투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고인 박경인 씨는 "발달장애인이 선거에 자꾸 참여해야만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더 잘 보장할 방법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발달장애인도 이제는 선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쉬운 투표용지를 가질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