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암, 다시 생각난 법조인들의 죽음[법조팀장의 사견]

암 확진 후 '나는 왜 예외라 생각했을까' 후회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살펴봤으면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2018년 이승윤 판사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법조계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아버지 상을 치르고 새벽까지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무리를 한 이 판사는 결국 자택에서 쓰러졌습니다. 그의 나이 고작 42세.

서울서부지법의 이대연 부장판사는 회식 중 갑작스레 쓰러져서 유명을 달리합니다. 네 아이의 아버지였던, 송영승 변호사도 최근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50대에 불과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법조인들이 젊은 나이에 여러 난치병을 얻어 휴직에 들어가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곤 했습니다.

처음 이런 소식들을 접했을 때 정말 가슴이 아프면서 동시에 '분명 몸에서 신호를 보냈을텐데 왜 알아채지 못 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최근. 그 안타까움의 대상자가 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직장암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죠.

몸에서 보내던 신호를 '별 거 아니겠지'라고 치부하며 넘어갔던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남자들이 흔히들 겪는다는 치질 질환 증상 중 하나겠지',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거겠지', '아직 그렇게 아프지 않으니 다음에 병원에 가보자'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대가는 무척이나 컸습니다.

점점 더 몸의 이상 징후가 심해지면서 뭔가 탈이 났구나 싶었을 때도 암이라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38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이고, 3년 8개월 전 대장 내시경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까요.

날벼락 같은 직장암, 그것도 초기가 아닌, 상당히 많이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암담하고 우울한 생각들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며 저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40살도 안 됐는데 대체 왜 이런 불행이', '험난했던 내 인생이 이제 좀 안정기로 가나 싶었는데…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하는 마음들이요.

그러다 갑자기 앞서 언급했던, 고인이 된 법조인들의 얼굴과 이름이 한명 한명 떠올랐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거였다는 걸 그 분들을 보면서 알고 있었는데, 왜 나는 거기서 예외라고 생각을 했을까'

다른 직업군들도 힘든 곳이 많겠지만, 법조계도 고강도 업무 강도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법조기자로 일한 10여 년 동안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가면서 일을 하는 법조인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암 확진을 받은 저는 이 분들에게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만 잠시 멈추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시라. 사소한 몸의 신호도 그냥 지나치지 마시라'고 말입니다.

법조인 뿐 아니라, 동료 기자들, 그리고 이 칼럼을 보시고 있으시는 독자 분들은 저 같은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길 하는 마음입니다.

'직장에 악성 종양이 발견돼 다른 곳으로 전이됐는지를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아 암을 직감한 날, 아무 것도 모르는 5살 딸아이가 갑작스레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작별 인사가 무슨 뜻이야?"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의 뜻이 궁금해 물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의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와 정말로 작별 인사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상상됐기 때문입니다.

이번으로 9번째인 '법조팀장의 사견'은 연재를 중단할 듯 합니다. 하지만 작별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10번째 사견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들과 다시 사견을 나누는 시간을 꿈꾸며 버티겠습니다.

모두 다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