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불편러가 본 '사법살인 피해자 이재명'[법조팀장의 사견]
민주당 최고위원들 '사법살인' 한 목소리 재판장 비난
고통 속 살아가는 '인혁당' 유족들이 진짜 사법살인 피해자
- 이장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누리꾼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양학'이라는 단어입니다. '양민 학살'의 줄임말로, 주로 스포츠 경기나 게임에서 고수 한 명이 수많은 하수를 상대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 쓰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볼 때마다 무언가 마음속에 가시가 돋은 것 같은 불편함 마음이 듭니다.
왜냐면 과거 우리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수없이 벌어진 무고한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들을 너무나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이런 저에게 누군가는 '프로 불편러', '진지충',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라고 하겠지만요.
그런데 최근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 이후 나온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입니다.
"사법 정의를 크게 훼손한 이번 정치판결에 동조할 국민은 없습니다. 이재명에 대한 1심 재판부 판결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법살인'입니다"
"검찰의 조작 수사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 처음부터 유죄 결론을 내리고 짜 맞추기 한 '사법살인', 정치판결입니다"
"정치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사법살인' 판결이란 점을 거듭 밝힙니다"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원들은 이 대표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를 향해 '사법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목소리로 힐난했습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이 대표는 '사법살인'의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50년 가까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아온 진짜 '사법살인'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간첩 누명을 써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던 8명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사형수들과 그 유족들입니다.
"저는 지금도 아버지의 꿈을 꾸면 아버지가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다 집으로 몰래 숨어 와 배가 고프니 밥을 차려 달라고 하는 꿈을 꿉니다. 그러면 나는 '그것 봐라. 아버지는 멀리 도망을 가서 살아 있을 줄 알았다'며 밥을 짓는 꿈을 꿉니다. (중략) 그런 꿈에서 깨고 나면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게 됩니다."
인혁당 사건 사형수 8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만화 '그해 봄'에서 피해자 고(故) 우홍선 씨의 막내딸은 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처형 전 아버지는 도망가고 가짜 시신이 집으로 온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고 김용원 씨의 부인은 수사기관에서 최음제로 추정되는 물을 마신 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불러주는 대로 남편의 죄를 시인하는 진술서를 쓴 뒤 자책감에 자식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이 대표가 이 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유족들과 같은 '사법살인 피해자'라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건 저 같은 '프로 불편러'뿐일까요.
사법살인의 사전적 의미는 '기소된 사람들이 죄가 없는데도 유죄를 확정하고 사형을 선고한 후 서둘러 사형을 집행하는 일'을 말합니다. 최근에는 '죄가 없는데도 증거를 조작해 유죄를 만들어 사회적으로 완전 매장시킨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대표 사건이 여기에도 해당하는지 의문입니다.
이 대표는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성남시가 적의 판단하라'는 국토교통부 공문이 버젓이 남아있는데 "협박당했다"고 국정감사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김문기 씨를 알지 못 했다"는 발언은 무죄 가능성이 높지만, '국토부 협박' 발언은 무죄를 받기 극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이 대표 유죄 판결에 공감하는 쪽이 더 많습니다. 22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이 대표의 1심 판결이 '적절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49%로 '잘못된 판결'이라는 응답(41%)보다 높았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 대표에게 징역형이라는, 예상 밖의 중형이 선고된 이유 중 하나가 민주당이 지속해서 사법부에 정치적 압박을 가한 것이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제 이 대표의 위증 교사 사건 1심 선고도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법살인'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이 대표를 옹호했던 의원들이 과연 이 대표를 더 궁지로 몰게 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지, 아니면 이번엔 이 대표가 '사법살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지 모두의 관심이 서초동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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