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도구 분실로 미제된 사망사건 23년 만에 판결…法 "국가배상"

염순덕 상사 사망…같은 부대 준위·기무사 소속 중사 살해 뒤늦은 입증
법원 "헌병대 사건 초기 증거확보 매우 미흡…증거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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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군의 부실 수사 때문에 미제로 남았던 고(故) 염순덕 상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유족에게 9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사건 발생 23년 만에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판사 손승온)는 지난 18일 염 상사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총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이던 염 상사는 35세이던 2001년 12월 11일 부대 회식 후 같은 부대 준위 B 씨와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중사 C 씨와 별도의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귀가하다가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숨진 염 상사는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됐고, 발견된 곳 근처 하천 자갈밭에선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염 씨의 피가 묻은 대추나무 가지가 발견됐다. 또 사망 현장에서 약 1m 옆 도로변에서 수거된 담배꽁초 2개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 각각 B, C 씨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사건을 수사한 헌병대는 B, C 씨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사건 당시 함께 당구를 치고 있었다는 이들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B, C 씨의 유전자가 검출된 담배꽁초 2대도 "경찰관들이 신고 접수 후 현장에 출동해 주점에서 담배꽁초를 수거한 뒤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수사단서로 효력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15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이 2015년 7월 시행되면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재수사를 통해 당시 B, C 씨의 알리바이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하지만 재수사가 시작되자 염 상사를 직접 살해한 인물로 지목된 C 씨는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B 씨는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으나, 검찰은 피의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염 상사의 유족은 2018년 9월 "망인이 B, C 씨한테 살해됐음에도 헌병대와 경찰의 부실 수사로 오랜 기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보훈 보상 대상자 인정도 지연됐다"며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사건 발생 초기에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을 정도의 부실한 수사를 진행해 증거확보가 매우 미흡했고,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망인을 살해한 범인, 살해 경위 및 동기 등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히 "헌병대는 담배꽁초 등 가장 중요한 물증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믿을 수 없다고 단정 지어 수사단서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면서 "사건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살해 도구인 대추나무 몽둥이도 헌병대에서 보관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분실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살해 도구를 분실하고 그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그 자체로 과실이 중대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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