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유예 대학생'이 본 검찰의 '김건희 무혐의'[법조팀장의 사견]

2007년 위헌소지 법 적용…대학생에 고압적 조사·유죄 판단한 검찰
답변 무기한 기다림·출장조사·변호인 같은 브리핑…너무나 친절한 檢

편집자주 ...사견(私見)이란 개인적 생각을 뜻합니다. 기사에는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눠 보려 합니다. 사견(邪見)은 지양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체코로 출국하기 위해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체코 방문을 통해 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이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후속 조치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2024.9.1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던 2007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그해 1월 이상한 지침을 하나 발표합니다.

'선거 UCC물에 대한 운용 기준'이라는 이름의 이 지침.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통령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 또는 정당, 후보자 대한 지지·반대하는 내용의 UCC를 인터넷에 올릴 경우 그 내용이 단순히 의견 개진의 정도를 넘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인정된다면 규제하겠다"

선거 반년을 앞두고 인터넷에선 후보자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침에 분노했던, 21살의 한 대학생은 선거일 180일 전 새벽이 되자마자 개인 블로그에 한 경선 후보자에 대해 불호 및 반대를 표하는 글을 1건 올립니다. 잡아가려면 잡아가 보라고 항의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루 방문자가 10여 명에 불과했던 블로그의 그 글은 신고당했고 졸지에 그 대학생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경찰은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정중하게 질문을 한 경찰은 기대와 달리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합니다.

학생은 군대 입대와 대선을 하루 앞두고 검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친절했던 경찰과 달리 검찰은 눈빛부터 달랐습니다. 말투와 태도, 질문 내용까지 시종일관 고압적이었습니다.

"저쪽 캠프에서 시켰나""안 시켰습니다. 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누가 시켰으니까 이렇게 적은 거 아냐?""아닙니다. 저는 저쪽 후보도 싫어합니다"

질문을 받다 보니 이 대학생은 본인이 진짜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 대학생은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됩니다. 기소유예는 죄가 되지만 사정을 봐줘서 재판에는 넘기지 않겠다는 처분입니다.

하루 방문자 수가 수십 명에 불과한 개인 블로그의 그 글 1건이 단순히 의견 개진을 넘어서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검찰은 판단한 것입니다.

다행히 헌법재판소에서 2011년 이 같은 법 적용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2007헌마1001 등)을 내려줘 이 대학생은 기소유예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년 뒤 법조팀장이 된 이 학생은 최근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블로그 글 하나로 학생을 그렇게 범죄자 취급을 하며 몰아세우고 결국 죄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던 검찰이, 너무나 피의자 진술을 신뢰하고 피의자 입장에서 결론을 내려주는 친절한 모습을 보인 겁니다.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10.1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바로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 관련 4시간의 언론 브리핑이었습니다.

검찰은 4시간 동안 무혐의 처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했습니다. 마치 변호인이 법정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김 여사 진술이 여러 상황과 일치한다, 합리적 의심 여지없을 정도로 유죄 입증돼야 하는데 증거가 부족하다. 그래서 무혐의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습니다.

검사들이 이렇게 피의자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분들이었구나, 17년 전 위헌 소지가 있는 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받던 대학생을 그렇게 범죄자 취급하던 검찰과는 많이 달라졌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좋아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듯합니다. 1심 무죄 판결이 나오자 검사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처해 법원 판결을 비판하던,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를 보복 기소해 법원에서 공소 기각이 되던, 사법부를 들쑤시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며 무리한 기소를 했던 검찰의 행태가 불과 몇 년 전 일이었습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가가 무죄 확정 피고인에게 준 보상금이 올해 상반기만 329억 4700만 원에 이르고, 5년간 무죄 평정을 받은 사건 중 약 16%가 검사의 과오 탓이었다고 지적된 바도 있습니다.

1년 동안 서면 답변서를 기다리고, 조사도 경호처 부속시설에 출장을 나가 휴대전화를 모두 반납한 검찰.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한 검찰의 친절한 4시간의 설명에도 '7초 주문', 'BP 패밀리' 등 의혹들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고, 오히려 '거짓 브리핑' 논란이 일면서 '김 여사 봐주기' 의혹은 더욱 커졌습니다.

과연 17년 전 대학생의 블로그 글 1건에 대해 위헌 소지가 명백한 법을 적용해 죄가 있다고 판단했었던 검찰이라면 김 여사에게 무혐의 결론을 냈을까요.

올해 국정감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입니다. 과연 17년 전 대학생에게, 무죄가 확정된 수많은 피고인에게 적용했던 법과 원칙이라는 검찰의 판단 기준이 김 여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요.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