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2→20'…일용직, 월 최대 며칠 일할 수 있나[세상을 바꿀 법정]

⑪대법 21년 만에 월 가동일수 20일로 변경
법조계 "과대배상 경계해야"vs노동계 "현실 외면한 판결"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인 동시에 나침반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정에서 나침반의 방향을 돌려놓을 사건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법정'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대체됐는지를 살펴본 데 이어 '세상을 바꿀 법정' 시리즈를 통해 나침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짚어봤다.

ⓒ News1 DB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도시 일용근로자가 한 달간 일할 수 있는 최대 근무 일수는 며칠일까.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 답에 따라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도시 일용근로자 월 가동 일수'는 산재보험이나 손해배상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손해배상액에 포함되는 일실수입을 산정할 때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일실수입은 근로자가 다치지 않았다면 벌 수 있었을 소득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2003년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을 초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올해 21년 만에 20일을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판례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받을 손해배상금이 이전보다 줄어들게 된다. 일실수입이 감소하므로 업무상 재해 시 받는 휴업급여도 감소한다.

법조계에서는 '과대배상'의 가능성을 고려한 판결이라는 평이 나온다. 반면 노동계는 "대법원이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9m 높이 노동자 추락 사건서 시작…엇갈린 1,2심

일용직 노동자인 A 씨는 2014년 7월 30일 경남 창원의 여관에서 높이 28m의 굴뚝 철거 작업을 하다 크레인에 연결된 안전망이 굴뚝 위 피뢰침에 걸려 뒤집히면서 약 9m 높이에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안전망에 함께 타고 있던 동료가 숨지고 A 씨는 좌측 장골과 경골, 비골이 골절됐다.

공단은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A 씨에게 휴업급여 2억 900여만 원, 요양급여 1억 1000여만 원, 장해급여 3167만 원을 지급했다. 이후 공단은 크레인의 보험자인 삼성화재를 상대로 7957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도시 일용노동자의 월 근로일수를 19일로 계산하고 삼성화재가 공단에 7118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월 근로일수를 22일로 계산하고 1심보다 많은 7460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통상근로계수는 일용노동자의 한 달 평균 근로일수 22.3일을 전제로 산출된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19일→22일→대법 "20일로 계산해야"

그러나 대법원은 월 근로일수를 20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월 근로일수를 종전 25일에서 22일로 변경한 2003년 이후 21년 만에 견해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4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대체공휴일이 신설되고 임시공휴일 지정도 가능해져 연간 공휴일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지속적 변화가 있었다"며 "근로자 삶의 질 향상과 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는 등 근로·생활 여건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의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의 최근 10년 월평균 근로일수 등에 의하면 과거 대법원이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 정도로 보는 근거가 된 통계자료 등의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고 봤다.

이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0일을 초과해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원심은 관련 통계나 도시 일용근로자의 근로 여건에 관한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심리해 월 가동 일수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경 ⓒ 뉴스1

법조계 "과다배상 고려된 듯"…노동계 "비정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인정해 계산할 경우 실제 소득보다 배상액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대법원에서 이 부분을 고려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앞서 2021년 서울중앙지법은 의료사고 관련 손해배상 사건에서 월 가동 일수를 18일로 감축한 판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법정 근로일수는 줄고 공휴일은 증가했다"며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도시 일용근로자와 관련된 고용 형태별, 직종별, 산업별 월 가동 일수는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대법원판결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선고 후 성명을 내고 "일용노동자들은 대체공휴일, 임시공휴일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이번 판결로 산업재해를 당한 일용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액수가 줄어들고, 월 노동 일수 입증 책임까지 짊어지게 돼 육체적 고통에 이어 경제적·정신적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비정함에 안타까움과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과 관련해 "모든 사건에서 월 가동 일수를 20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증명하면 20일을 초과해 인정될 수 있고 사안에 따라 20일 미만이 인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