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재소장 퇴임…"사법의 정치화 경계, 재판독립 이뤄야"

"정치 개입땐 헌재 결정 불신 초래…민주주의 해칠 것"
이영진 "후임 선출 안돼 사건 심리·처리 더 정체" 우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2024.10.17/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17일로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헌법재판소를 정쟁의 무대로 삼는 여의도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이 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헌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과 같은 유형의 심판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소장은 이른바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해외의 관심 등에도 "헌법재판소의 현재 상황이 위기라고 느끼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평가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변화가 필요한 위기 상황에 홀로 힘들게 서 있는 형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정치적 성격의 분쟁이 사법부에 많이 제기되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은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이 지적하는 바"라고 짚었다.

이 소장은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며"이라며 "이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임이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 헌법재판소 가족 모두는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굳게 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이영진·김기영 헌법재판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10.17/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헌재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꾸준히 높여 나가기 위해 재판연구인력 확충, 예산 확보, 인사제도 개선 등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소장은 "금년 상반기에 다수의 미제사건이 감소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었지만, 이러한 효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이려면 사건 접수의 경향이나 성격, 관련 통계의 세심한 분류에 기초해 개선 방안의 시행에 따른 성과와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내년 이후로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퇴임하는 이영진 재판관 역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 격언과 함께 우리 재판소에 대해 신속한 사건처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오고 있다"며 "후임 헌법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의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재판관은 "우선 헌법상의 기본권보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무분별하게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남소자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검사의 기소유예처분 취소사건은 법원 등으로 관할을 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양적으로 접수사건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 함께, 질적으로도 보다 심도 있는 헌법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사건이 증가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해서는 헌법연구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재판, 국내 및 국제회의, 출장 등에서 그 동안 잘 한 일이 있다면 모두 재판소 구성원 여러분의 공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 탓"이라며 "앞으로 재판소에서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많이 하실 것"이라고 격려했다.

한편 여야는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를 놓고 아직까지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때 '10월 마비설'까지도 거론됐으나, 헌재가 지난 14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하도록 정한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가까스로 사건 심리가 가능해졌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