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장애 없다며 '투표 보조' 거부…法 "발달장애인도 보조 허용"

지방선거·대통령선거서 잇따라 발달장애 투표 보조 거부
법원 "입법 취지 고려해 편의 제공 받을 권리 보장해야"

2024 하반기 재·보궐선거 투표일인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우성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24.10.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시각·신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에게도 투표 보조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판사 고승일)는 발달장애인 A·B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청구 등 소송에서 "국가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선거·국민투표에서 원고들에게 가족 또는 원고들이 지명하는 2명의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또 "투표관리 매뉴얼에 투표 보조를 허용하는 '시각·신체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에 '발달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도 포함된다'는 내용을 명시하라"고 주문했다.

중증 발달장애인인 지난 2022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어머니와 함께 투표소를 방문했으나 투표를 할 수 없었다. A 씨의 어머니는 혼자 기표하기 어려운 A 씨와 함께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 보조를 하려고 했으나, 투표 사무원은 '신체장애가 없으면 투표 보조가 불가능하다'면서 이를 막았다.

B 씨 역시 같은 해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소에 방문해 투표사무원에게 투표 보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재판부는 A·B 씨에 대한 투표 보조 거부가 정당하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투표사무원이 단시간에 발달장애인에 대해 혼자 기표할 수 없는 신체장애가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외부로 드러나는 신체 기능 장애가 없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혼자 기표할 수 없는 경우라도 투표 보조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직선거법 157조 6항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를 허용하는 선거인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법 조항에서는 '시각·신체 장애로 자신이 투표할 수 없는 선거인'의 경우 가족이나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은 시각장애인 선거공보, 후보자 방송광고 한국수화언어·자막 방영 등 장애 유형·정도에 적합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다"며 "이 법률조항 역시 장애인의 선거권 행사에 필요한 조치를 구체화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인의 선거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당 조항을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어려움을 겪고 인지·적응 능력이 저하돼 투표소와 같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더 어려움을 겪는다"며 "투표 보조를 받아야만 자기 의사에 부합하는 투표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