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불속행 30년'…대법 판결 절반 이상 이유도 모른 채 '기각'

94년 대법원 재판 효율화 위해 도입…특례법 따라 심리없이 원심 확정
전산화 2002년 이래 심불 평균 비율 민사 55%, 가사 83%, 행정 73%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노선웅 이밝음 기자 = 지난 2002년 재판 업무 전산화 이후 대법원판결을 전수조사한 결과 2건 중 1건 이상이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상고 남용을 방지하고 대법원 재판 효율화를 위해 1994년 9월1일 시행됐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유도 모른 채 '기각' 결정을 받게 되는 셈이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재판 업무 전산화 이후부터 올해(1~8월)까지 민사와 가사, 행정 본안 상고심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 비율은 각각 약 54.6%(소권남용인 특정 당사자 건수 제외), 83%, 72.6%로 조사됐다.

민사의 경우 2002년 45.1%를 차지했지만 2011년 65.3%까지 상승했다. 이후에는 등락을 반복했다. 가사 사건은 2002년 62.3%에서 2016년 이후 80%대까지 치솟았다. 2002년 42.7%였던 행정 사건 역시 2016년부터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법원 재판 당사자들 입장에선 판결 2건 중 1건 이상이 이유도 모른 채 기각되는 셈이다.

심리불속행에서 제외되는 형사사건 역시 대부분 판결이 한 줄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리불속행 기각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일본처럼 최고법원이 다룰만한 사건이 아니면 상고를 제한하는 '상고허가제'를 도입하거나, 대법원에 '상고법원'을 따로 두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논의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법조계에선 대법원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을 둘 수 있다는 헌법 근거 규정을 들어 다른 판사를 더 두거나 좌초된 상고법원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관 12명이 1년에 4만 건의 재판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심리불속행이 불가피한 제도라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차원에선 한정된 인적자원으로 지연 없이 많은 재판을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며 "함께 논의되는 대법관 수 증원이나 상고 법원 문제 등은 서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결국 근본적으로 대법원 개혁이 중요하다. 30년 동안 여러 아이디어가 난무하다가 그냥 흘러갔는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buen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