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부, 대책 있습니까' 재판관의 탄식…헌재 '마비' D-4
여름부터 '헌재 마비' 우려 나왔지만 국회 후임 인선 절차 '깜깜'
'예비재판관 제도' 등 공백 방지 안전장치 마련해야
- 윤다정 기자, 김기성 기자
11월 12일 변론 예정됐는데 아마도 재판관 3명이 공석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재판관이 6명으로 줄어들고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에 따라 변론을 열 수가 없습니다. 청구인(국회)과 피청구인(정부) 대응 방안 있습니까?
(서울=뉴스1) 윤다정 김기성 기자 = 지난 8일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사건 2회 변론준비절차 기일에서 나온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질문이자 탄식이다. 형식은 질문이었지만 '헌법재판소 마비'에 손을 놓고 있는 국회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 3인의 퇴임까지 불과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후임 재판관 3인을 지명해야 할 국회가 손을 놓고 있어 공백이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급기야 이 위원장은 헌법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탄핵 심판이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법조계에서는 예비 재판관 제도 등 안전장치를 일찌감치 마련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17일 이 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이에 따라 총 9명인 헌법재판관은 6명만이 남아 사건 심리를 할 수 없게 된다.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은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 사건을 심리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법에서는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하는 경우 임기 만료일이나 정년 도래 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올여름부터 '10월 헌재 마비설'에 대한 우려가 일찌감치 제기됐음에도 국회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이에 이 위원장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에 대한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가처분도 신청했다. 이 위원장은 탄핵소추로 8월부터 직무가 정지됐는데,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으면 기약 없는 직무 정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7년 1월 박한철 소장 퇴임 후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이 때문에 같은 해 11월 27일 이진성 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헌재는 10개월 가까이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이듬해인 2018년에는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등 5명이 퇴임하면서 사상 초유의 '4인 체제'가 됐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2명 외에 국회가 후보자 3명의 추천 몫을 두고 샅바 싸움을 벌이면서 약 한 달 가까이 헌재 기능이 정지됐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 도입을 제안해 왔다. 재판관 수가 정수보다 적어졌을 때 재판에 참여하도록 '예비 재판관'을 임명하는 제도가 한 예다.
2017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논의가 있었으나 진전은 없었다. 이런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 당사자들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현재로서는 법적, 제도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며 "그런 문제들을 대비해 오래전부터 예비 재판관 제도를 두는 등 제도를 개선하자는 주장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에 더해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재적 의원의 과반으로도 탄핵소추가 가능하다"며 "원하는 공직자는 아무 사유 없이 탄핵소추만으로 직무집행정지가 되니, 주요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는 정국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의석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인선 지연을) 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 충분한데, 의도가 아니라면 빨리 민주당이 헌법상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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