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폰 중계기 관리한 퀵배달원…대법 "범죄 고의 인정"
1·2심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무죄…대법서 파기환송
"통신 매개된 타인의 범죄 이용 여부 인식 불필요"
-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지시를 받아 중계기와 휴대전화 유심을 관리하는 임무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 씨는 2023년 3~4월 대구 중구 소재 고시원과 동구 소재 다세대주택에서 중계기와 유무선 공유기를 설치해 인터넷망에 연결한 뒤,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를 받아 유심을 갈아 끼우고 총 47개의 휴대전화 번호를 관리하며 조직원들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도운 혐의를 받았다.
오토바이 퀵배달원인 A 씨는 업체의 퀵배송 요청을 수행한 뒤, 같은 업체로부터 "휴대전화 공기계에 유심을 꽂아 개통해 주면 1대당 3000원, 개통된 유심을 통신 중계기에 꽂아 주면 1회 출동 당 3만 5000원을 주겠다"는 의뢰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통신을 연결해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1심과 2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자신의 행위가 범죄와 관련됐다는 사실을 A 씨가 알지 못했을 것으로 보여 고의가 있었음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타인 통신 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A 씨가 업체의 의뢰로 받은 보수는 부당하게 과하지 않고, 통신 중계기 기능과 유심 교체 작업 이유를 정확히 몰랐던 데다, 빼낸 유심을 버리지 않은 채 가지고 있었고 대화 화면도 갈무리해 보관하고 있었으며, 경찰 지시에도 순순히 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타인 통신 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에서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타인 통신 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의 고의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통신을 연결해 준다는 것에 대한 인식만이 필요하다"며 "통신이 매개된 타인이 그 통신을 범죄에 이용한다는 것까지 인식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조직은 조직원을 통해 피고인에게 통신 중계기, 통신 공유기, 휴대전화 공기계, 휴대전화 유심 등을 제공했다"며 "피고인은 조직원의 지시를 받아 1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장소를 옮겨 가며 통신 중계기와 통신 공유기를 연결하고 휴대전화 공기계에 유심을 꽂아 개통한 후 유심을 통신 중계기에 수시로 꽂았다가 빼내는 등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조직원으로부터 제공받아 설치한 통신 중계기에는 유심을 꽂는 포터가 16개나 있었고, 피고인은 체포될 당시 51개의 유심을 소지하고 있었다"며 A 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공모해 고의로 타인통신매개 행위를 했다고고 판단했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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