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받았지만 무혐의"…힘 받는 '배우자 처벌' 신설

검찰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 처벌 조항 없다" 불기소
학계 "입법 불비" vs "현행법 충분"…법 개정안 잇단 발의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민주주의진흥재단(NED)에서 진행된 북한인권간담회에서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7.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명품가방을 수수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해 검찰이 "처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하면서 현행 청탁금지법에 배우자 처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현행법 체계에서도 수사·조사기관의 역할만으로도 처벌 가능한 만큼 법 개정은 후순위라는 반론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는 2일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했다. 검찰은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배우자가 직무 관련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있으나 위반 행위에 대해 처벌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고 처분 배경을 설명했다.

"입법 불비" "법 개정 시급"…야권, 잇따라 개정안 발의

검찰의 결론은 김 여사가 영부인 신분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당장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등 야권을 중심으로 배우자도 공직자와 같은 기준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배우자 처벌 조항은 2010년대 초반 제정 논의 당시부터 논란이 됐으나 2015년 최종 입법 과정에서 제외됐다. 형법상 금품 수수를 처벌하는 뇌물죄와 청탁금지법의 차이에 그 이유가 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사회에서 장기간 은밀하게 오가는 뇌물을 수사기관에서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제정됐다. 이에 뇌물죄와 달리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수사기관이 입증하지 않아도 처벌 가능하다.

법에 따르면 명목과 관계없이 1회 100만 원 또는 매년 300만 원을 초과한 금품 수수, 요구 또는 약속을 한 공직자는 처벌한다.

그러나 공직자의 배우자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제8조 4항)고 규정하면서도 별도의 처벌 조항은 두지 않았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안 공직자가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지 않을 경우(제9조 1항)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규정만 뒀을 뿐이다.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과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 제고를 위해 제정된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배우자 처벌 조항 신설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자 본인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면 처벌됐을 것을 배우자한테 청탁하면 처벌되지 않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입법 불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초 법 규정 미비로 논란이 생길 거라고 예상을 못 했던 것 같다"며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더 생기기 전에 청탁금지법의 본래 취지대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2024,10.2/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적용 범위 과도…"입법 취지 고려하면 배우자 처벌 가능"

2014년 법 제정이 논의될 당시만 해도 처벌 대상에 공직자 배우자뿐 아니라 부모, 자녀 형제자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도 다수였다. 그러나 이 경우 법 적용 대상자가 최대 2000만 명에 육박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범위가 공직자로 한정됐다.

이런 맥락에서 독립된 사회관계 주체인 배우자 처벌 조항 신설은 과도하다는 반론도 있다. 배우자인 공직자의 직무와 관계없이 독자적 사회활동을 영위하는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청탁금지법 주무 부서인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조사권을 부여해 배우자의 금품수수와 공직자의 직무 관련성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는 "공직자 배우자의 직무와 관련이 없는 사적인 금품 거래까지도 공무원이 신고하게 만드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청탁금지법 규정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실관계 인정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며 "(명품백 사건을) 제대로 수사, 조사를 통해서 정리할 수 있으면 되는데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으면서 불신이 쌓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반 공무원에게 명품 가방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권익위나 검찰도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법 개정이 안 되더라도 법이 추구하는 바는 지금도 실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 취지에 맞게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처벌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별도 처벌 조항을 만들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예방할 수 있다는 취지다.

ausu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