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vs 창조론" 100년 논쟁, 크리스천 판사의 일침

인권위원장 "믿음의 문제, 같이 가르쳐야"[법조팀장의 사견]
美 판사 "창조론 과학 아니다"…종교 기반한 대안 가설 교육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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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4.9.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지난 9일 취임한 안창호 신임 인권위원장의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최근 무미건조한 답변들이 난무했던 다른 청문회와 달리 화끈했습니다. 안 위원장이 본인의 보수 기독교적인 사상을 거침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후보자의 답변이었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저는 없다고 생각한다", "창조론도 진화론도 과학적인 증거보다는 단순한 믿음의 문제", "양자에 대해 같이 가르쳤으면 좋겠다"

이 답변을 보면서 미국에서 '진화론 대 창조론'이 법정에서 맞붙은 사건들, 그리고 안 위원장과 닮은 꼴인 미국의 한 법조인이 생각이 났습니다.

"진화론 가르치지마"… 100년 전 '원숭이 재판'

첫 번째 사건은 약 100년 전이었던 1925년 '원숭이 재판'으로 불린 '스코프스 재판'입니다. 미국 테네시주의 데이턴이라는 소도시의 고등학교 생물 교사인 스코프스는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집니다. 테네시주 의회가 교사들이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일명 '버틀러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스코프스의 유죄로 평결이 났고, 판사는 법정 최저형인 벌금 100달러를 선고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 재판을 보고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고 합니다.

일개 주가 대륙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한 개인이 모든 유럽인으로 하여금 미국이 정말 문명의 세례를 받은 나라인지를 묻도록 만드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테네시주와 브라이언 씨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뤄냈다

"진화론 가르칠 거면 창조론도"…연방대법원 "헌법 위반"

두 번째 사건은 '에드워즈-아귈라드 재판'입니다. 이 재판은 1987년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함께 가르칠 것을 의무화하는 루이지애나주 법령이 국교를 금지한 헌법을 위반했다고 과학 교사 돈 아귈라드'가 고발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이 재판에 72명의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과 20여개 학술단체가 나섰습니다.

연방대법원은 7대2로 루이지애나주 법령이 정교분리 원칙을 정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연방대법원 판결로 더 이상 미국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칠 수 없게 됐습니다.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 판결한 보수 기독교인 판사

'에드워즈-아귈라드 재판'으로 창조론을 가르칠 수 없게 된 창조론자들은 이제는 창조론을 지적 설계로 바꿔 다시 공교육 진입을 시도합니다.

지적 설계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바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입니다. 간단히 말해 생명체의 기능은 복잡하기 때문에 진화로는 생길 수 없고, 지적인 존재에 의해 디자인됐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기 위해 신이 아닌 '지적 설계자'를 상정한 것도 특징입니다.

2004년 펜실베이니아주 작은 도시 도버에서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은 법정에서 맞붙습니다. 도버 교육위원회가 지적 설계를 과학 수업에 포함하도록 하는 지침을 통과시켰고, 학부모들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연방법원에서 진행된 이 사건 판사의 이력에 진화론 측은 낙담했습니다. 판사가 지적 설계 교육을 지지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고 공화당 지지자이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존 E 존스 3세' 판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존 E 존스 3세 판사

그러나 존스 판사는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며 지적 설계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판결했습니다.

존스 판사는 "지적 설계는 흥미로운 신학적 주장이지만, 과학은 아니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그 이유로 △지적 설계가 초자연적 인과관계를 허용해 수 세기에 걸친 과학의 기본 규칙을 위반하고 △지적 설계의 핵심인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주장은 창조론과 같은 결함이 있고 비논리적이며 △진화에 대한 지적 설계의 공격은 과학계에서 반박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또 지적 설계를 가르치는 것이 종교적 목적에 해당한다고 봐 정교분리 원칙을 정한 헌법에 위반된다고도 판단했습니다.

존스 판사는 판결문 말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확실히 다윈의 진화론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과학 이론이 아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구실로 종교에 기반을 둔 검증할 수 없는 대안 가설을 과학 교실에 밀어 넣거나, 잘 확립된 과학적 명제를 잘못 표현해서는 안 된다

과학의 사전적 정의는 '보편적 진리나 법칙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수많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으며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결론을 정해놓고 그 결론에 따라 근거를 만드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 인류는 이미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며 과학적 발전을 가로막았던 중세 시대를 겪은 바 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모든 행성이 돈다는 '천동설'을 다시 믿을 순 없습니다.

존스 판사와 안 위원장은 여러 면에서 '닮은꼴'입니다. 안 위원장도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후보로 추천해 헌법재판관이 됐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인용 보충 의견에서 성경을 인용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하지만 창조론에 대한 접근법은 한국과 미국의 거리만큼이나 멀어 보입니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