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쓰레기·반려견 분뇨 먹인 동거녀…벗어날 수 없었던 가스라이팅

[사건의재구성] 무속인 행세, 가족 들먹이며 위협
26일 첫 공판서 박 씨 측 혐의 인부 여부 입장 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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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칼로 네 몸을 찌르지 않으면 네 엄마 몸을 대신 다칠 거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말을 쉽사리 따를 리 없다. 보통은 헛웃음 치며 무시한다. 혹은 반항하거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허무맹랑한 협박을 굳게 믿고 잔뜩 겁먹은 이가 있다. 20대 초반 남성 A 씨(22)다. 그는 이내 칼을 들어 자기 몸에 갖다 댔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허벅지, 팔, 발 등 신체 일부를 여러 차례 찔렀다. 치료 기간을 산정할 수 없는 상해를 입었다.

A 씨를 이같이 자해하도록 만든 건 한 살 연상의 동거녀 무속인 박 모 씨(23)다.

A 씨가 박 씨를 처음 알게 된 건 2021년 3월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였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A 씨는 영적인 존재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박 씨에게 자신과 어머니 통증을 낫게 해달라며 공물 명목으로 117만 원을 송금했다.

박 씨는 이후 두 사람 통증이 일시 호전되자 모두 자기 덕분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면서 A 씨에게 반복적으로 "자신은 영적인 존재를 다룰 수 있다"며 "빙의되면 전지전능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믿게 했다.

1년간 가스라이팅을 하던 박 씨는 2022년 8월 A 씨가 성인이 되자 돌연 함께 살자고 했다. 당시만 해도 박 씨와 큰 문제가 없었던 A 씨는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됐다.

박 씨는 A 씨가 자기 말을 거역하거나 마음에 안 들 때면 빙의된 상태인 것처럼 행세하며 A 씨를 폭행하기 일쑤였다. 나아가 "내가 직접 너의 엄마 허벅지를 칼로 찌르러 가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가족과 가까이 지내면 그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위협하면서 A 씨를 가족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A 씨 곁에는 오직 자신뿐임을 강조하며 더는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A 씨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고 박 씨 만행은 더욱 잔인해졌다. 열을 식히지 않은 제모 왁스를 A 씨 얼굴과 허벅지에 부어 화상을 입게 하는가 하면 냉탕에 머리를 담그라고 말하고 등을 눌러 물 밖으로 못 나오게 했다.

한번은 박 씨를 길에 무릎 꿇은 채 앉히고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라고 말하게 시켰다. 박 씨가 태어난 게 잘못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밖에도 A 씨에게 협박과 폭행을 일삼으며 스스로 음식물 쓰레기와 반려견 분뇨를 먹게 했다. 급기야 재판에 넘겨지기 한 달 전인 같은 해 6월에는 여러 차례 공공장소에서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전날(27일)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정도성 판사 심리로 열린 박 씨의 특수상해 등 혐의 첫 공판에서 이 같은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박 씨는 이날 옥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법정에 섰다. 박 씨는 '직업이 뭐냐'는 재판부 질문에 당당하게 "무속인"이라고 답했다.

통상 피고인 측 변호인은 첫 공판에서 혐의 인정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데 박 씨 측 변호인은 다음 기일에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재판부는 내달 11일 오전 10시20분 차회 공판을 열고 박 씨 측 입장을 듣기로 했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