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신문' 검사와 변호사의 기우제[기자의눈]

뉴스1 DB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준비해 왔으니 일단 다 묻겠습니다."

형사 재판에서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경우 법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증인 신문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하루 종일 진행하고도 모자라 며칠씩 이어지기도 한다. 신문 시간이 길어지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런 대화를 보게 된다. '일단' 다 묻겠다는 주체는 검사일 때도 있고, 변호사일 때도 있다.

검사와 변호인은 유·무죄 입증이라는 반대 방향에 서 있으니 어떤 대답은 필히 한쪽의 마음에 들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면 으레 나오는 말들이 또 있다.

망설이는 증인에게는 "기억나는데 말하지 않는 것도 위증입니다", 적극적인 증인에게는 "증인의 추측이죠?"가 사용된다.

법률전문가의 날 선 말을 들은 증인들은 대개 몸을 사리며 더욱 소극적인 태도로 변한다. 증언은 다시 쪼그라든다.

이후 증인에게 쏟아지는 말들은 이미 질문이 아니며, 신문은 더더욱 아니다. 사건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진실을 입증하고자 하는 증인신문의 취지는 사라지고 없다.

형사 법정에 방청객으로 앉아 증인신문을 보다 보면 그 시간이 일종의 '기우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마치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지내듯이, 검사와 변호인이 각자 원하는 내용의 증언이 나올 때까지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검사와 변호인이 미리 준비한 질문들과 맞지 않는 증언들은 마치 없는 것과 같이 취급되며, 때로는 윽박으로 억눌러지기도 한다.

생업을 뒤로 하고, 게다가 위증의 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하며 법정에 선 증인들은 도대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아쉬운 점은 재판부에서도 이를 그저 '관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며칠씩이나 같은 내용이 반복돼도, 중요하지 않은 증인을 수없이 신청해도 이렇다 할 소송지휘 없이 받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재판보다 특히나 신속함이 강조되는 형사 재판은 증인신문을 이유로 하염없이 길어진다.

현재 조희대 대법원의 최대 숙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재판 지연' 해결이다. 대법원은 이를 위해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법조 경력 5년 이상의 법조인이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 인재가 법원에 온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증인신문이 계속된다면 재판 지연이 해결될 리 없다.

법원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운영 중인 제도의 구체적인 개혁도 필요하다. 재판 지연의 해결책은 여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당장 오늘 열리는 법정 안에 더 많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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