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에 김치·와인 강매' 태광 이호진, 파기환송심서 패소로 뒤집혀

공정위 상대 과징금·시정명령 취소소송
"이호진 관여 여지 많다" 대법 파기환송 취지 따른 듯

횡령·배임 의혹을 받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6일 오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4.5.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태광 계열사에 김치와 와인을 강매한 의혹을 받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했다.

11일 서울고법 행정6-2부(부장판사 위광하 홍성욱 황의동)는 이 전 회장과 그룹 계열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선고 이유에 대해 밝히진 않았지만 이는 앞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법원은 이 전 회장과 그룹 계열사들이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정위는 앞서 2019년 태광 경영기획실 지시로 계열 회사들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오너일가 소유인 휘슬링락CC와 메르뱅으로부터 김치와 와인을 일반 거래 가격보다 비싸게 매수한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계열사들은 김치를 10㎏ 당 19만 원에 구입해 약 95억 5000만 원어치에 달하는 512톤을 사들였고, 메르뱅 와인은 총 46억 원어치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 100% 소유인 휘슬링락CC에 최소 25억 5000만 원, 메르뱅에 7억 5000만 원의 이익이 돌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 같은 거래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며 계열 회사들에 과징금 20억 원을 부과하고 이 전 회장에게도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 전 회장과 계열사들은 공정위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고법에 취소소송을 냈다. 공정거래 소송은 신속한 판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울고법과 대법원의 2심 체제로 운용된다.

서울고법은 2022년 2월 공정위가 계열사들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이 전 회장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이 회장에게 내린 시정명령은 위법하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해 특수관계인의 이익제공 행위에 대한 '지시'뿐만 아니라 '관여'까지 금지하고 있다"며 "이때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 회장은 기업집단 태광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적 역할을 한다"며 "이 전 회장이 평소 오너일가 소유 회사에 대한 계열사의 이익제공 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태광 임직원들이 오너 일가 소유 회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원심판결 중 이 전 회장 관련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계열사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적법하다는 원심판결은 그대로 유지했다.

buen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