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너무 달콤했나…국회 '탄핵 중독'[법조팀장의 사견]

헌재서도 "정쟁 우려"…'탄핵 중독'서 벗어나 건강한 국회로

편집자주 ...사견(私見)이란 개인적 생각을 뜻합니다. 기사에는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눠 보려 합니다. 사견(邪見)은 지양하겠습니다.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3차 전체회의에서 기자회견 중 자신을 '빌런(악당) 정청래'라고 발언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사과를 요구하며 정회를 선언, 퇴장하고 있다. 2024.9.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어릴 때 달콤한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으면서 행복했던 기억들은 사람마다 하나씩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특히 한입에 쏙 들어가는, 몽골 텐트 모양처럼 생긴 초콜릿을 좋아해 "조금만 먹어야지"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한 봉지를 거의 다 비우곤 했습니다.

단맛은 뇌에서 도파민을 만들기 때문에 계속 의존하다 보면 중독이 생깁니다. 단맛을 섭취하지 않으면 금단증상까지 겪게 됩니다. 당도가 높은 과일에 설탕·물엿을 입혀 더 달게 만드는 탕후루의 유행 현상도 이런 중독성에 기인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단맛 중독' 현상이 정치권에도 퍼진 듯합니다. 탄핵이라는 단맛에 말입니다. 먼 과거에도 국회에서 검찰총장이나 대법관 등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탄핵이 추진된 적은 있었으나 대부분 엄포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성공이 너무나 달았던 것일까요, 그 이후 탄핵은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됐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 가릴 것 없이 '탄핵 카드'를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지금의 여당은 야당 시절에 홍남기 부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해 탄핵을 추진했었습니다. 물론 의원 수 부족으로 탄핵안은 폐기가 되거나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그런데 야당이 국회 절반을 넘는 훌쩍 넘는 다수당이 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탄핵안을 너무나 쉽게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탄핵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생전 처음 보는 탄핵 청문회를 열고 여론몰이를 계속합니다.

이 때문에 법원 1심 선고를 코앞에 둔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한 탄핵 추진 아니냐, 결국 이 대표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그 판사도 탄핵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를 수사했던 검사들이 탄핵 대상에 오르는 것을 보니 기우로 치부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탄핵 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진 적도 없습니다. 특히 가장 최근 탄핵심판이었던 이정섭 검사의 헌재 판단을 보면 국회 탄핵 소추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 사건 첫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이 검사는 강촌 엘리시안리조트 이용 선후배 검사 특혜와 처남 마약 사건 특혜, 김학의 뇌물 사건 연루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 2024.5.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 심판을 기각하면서 소추 사유 중 △범죄경력 무단 조회 △강촌 엘리시안리조트 대기업 임원 접대 및 선후배 검사 이용 특혜 △처남 마약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은 "소추 사유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코로나19 집합금지 위반 의혹과 자녀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서도 "직무집행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사유는 증인신문 전 증인을 사전면담했다는 것만 인정됐는데, 그마저도 재판관 7명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검찰 내부의 감찰자료나 수사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고가 이뤄졌다"며 불만을 내비쳤습니다. 수사기관, 헌재 탓을 하기 전, 의혹만 제기된 상태에서 탄핵 사유조차 제대로 특정하지 못한 본인들의 탄핵 소추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반성을 먼저 하는 게 수순 아닐까요.

헌재에서도 국회의 '탄핵 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달 27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 의결과 관련한 권한쟁의심판에서 "탄핵소추가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단 음식만을 통해 도파민을 얻게 되면 다른 것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혈액 속 포도당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몸의 균형이 깨진다고 경고합니다. 단맛에 중독되면 몸은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뇌는 다시 더 많은 단 음식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국회가 얼른 '탄핵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일하는 국회,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회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