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보조인 줄 알았는데 보이스피싱 수거책"…'무죄'로 뒤집힌 사정

1심 징역형 집유→2심 "범죄 가담 몰랐다" 무죄…대법 상고기각
"아르바이트 외 사회생활 경험 없어…받은 일당 13만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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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줄 알고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하게 된 20대가 처벌을 면하게 됐다. 범행 당시 고작 만 18세였던 데다 아르바이트 외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고, 받은 일당도 13만 원 정도로 지나치게 높지 않은 등 사정이 두루 고려됐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2022년 7~8월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공모해 총 7차례에 걸쳐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A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캔들 포장 알바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다음날 '사장'을 자처한 사람이 A 씨에게 연락해 "직원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려 당장은 아르바이트 채용을 못 하게 됐다"며 "지인이 대표로 있는 재무설계 회사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데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A 씨는 사무보조 일을 하기로 했고, 이후 텔레그램을 통해 "재무설계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전달받는 업무"라며 "받은 돈은 의뢰인의 세금 문제로 100만 원씩 나눠 입금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따라 A 씨는 피해자들을 만나 총 1억 450만 원을 받고 무통장 입금 방식으로 송금했다. 피해자는 모두 4명, 피해 금액은 적게는 800만 원에서 많게는 7800만 원에 이르렀다.

A 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데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는데, 1심은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그러나 2심은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A 씨가 범죄에 가담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먼저 "업무 시작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채용 과정이 이례적이라거나 채용 이후 하게 될 업무가 범죄와 관련이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 당시 만 18세 미성년자였고, 사건 전 편의점이나 식당 아르바이트 외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A 씨가 피해자와 만날 장소, 시간, 이동 방법, 현금 전달 방법 등 범행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텔레그램 메시지를 삭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더라면 남겨 둘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A 씨가 받은 일당 13만 원 역시 △주어지는 일이 불규칙하고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며 △현금 전달 업무에는 분실 위험이 있고 △2022년 기준 최저임금 근로자는 약 8만 원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는 점 등을 볼 때 대가가 지나치게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