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5년 만에 2심 뒤집어…"청구권 소멸 안 해"(종합)
소멸시효 두고 1, 2심 엇갈린 판단 원인은…대법원 전합 판단 영향
피해자 측 "강제동원 청구서 쌓여…日 정부·기업 신속 이행해야"
- 노선웅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5년 만에 2심 승소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부장판사 지상목 박평균 고충정)는 22일 고인이 된 강제노역 피해자 정 모 씨의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원고에게 총 1억 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이로써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5년 만에 뒤집혔다.
앞서 정 씨 유족은 지난 2019년 4월 일본 이와테(岩手)현의 가마이이제철소에 강제 동원됐다는 고인의 진술을 토대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은 2021년 정 씨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민법상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 권리행사의 장애 사유가 제거된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그동안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에 힘겨운 싸움을 하거나 소를 포기해왔다. 그러다 2012년 5월24일 대법원에서 개인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나왔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확정됐다.
이에 2심은 대법원 전합 판결을 들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원고들의 청구권 및 소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1부(부장판사 김연화 해덕진 김형작)가 심리한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일본제철 상대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도 1심이 뒤집히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일본제철에 사망한 강제동원 피해자 민 모 씨의 유족들에게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소멸시효가 지났단 이유로 패소로 판결한 1심 판결을 대법원 전합 판결을 근거로 약 2년 만에 뒤집었다.
재판부는 "전합 판결 선고로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법적 구제가능성이 확실하게게 됐다고 볼 수 있고,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망인의 상속인인 원고들에게는 전합 판결이 선고될 때인 2018년 10월 30일까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며 "원고들은 3년이 경과하기 전인 2019년 4월 30일 소를 제기했으므로 상당한 기간 내에 소를 제기했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가 망인이 돼 입증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명부에 의하면 망인의 해고 사유는 '도망'이고 이는 유족인 원고 A와 진술과 일치한다"며 "망인이 일본에 동원된 것은 1960년생인 A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므로 망인의 강제동원 시기를 정확하게 알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점, 60여 년이 지난 시기인 점 등을 고려하면 A가 진술한 도일 연도와 명부에 기재된 망인의 고용 시기가 2년 정도 차이 나고, 군수공장의 이름이나 위치를 알지 못한대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 씨 유가족을 대리한 전범진 변호사는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나 "2심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렸다"며 "상고심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 씨 유가족을 대리한 이상희 변호사는 "전원합의체 판결 한참 뒤에 선고가 나는 바람에 많은 피해자가 돌아가셨고,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피해 내역을 직접적인 육성으로 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일본제철도 그 허점을 이용해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주장을 했는데 각 제철소에서 일하신 분들이 남겨놓으신 자료들, 이춘식 할아버지 판결에서 법원이 인정한 자료들을 통해 불법 사실이 인정됐다"고 밝혔다.
소송을 주도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지난 7월 20일 이후에도 추가판결이 있다. 계속해서 일본제철의 강제동원 관련 청구서가 쌓이고 있다"며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는 해결을 위해서 판결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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