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5년 만에 2심 승소…"소멸시효 지나" 1심 뒤집어

소멸시효 두고 1, 2심 엇갈린 판단 원인은…대법원 전합의 판단 영향
피해자 측 "강제동원 청구서 쌓여…日 정부·기업 신속 이행해야"

'일제 강제 징용' 관련 유가족 측 대리인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별관에서 열린 일본제철 주식회사 손해배상 2심 선고를 마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8.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5년 만에 2심 승소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부장판사 지상목 박평균 고충정)는 22일 고인이 된 강제노역 피해자 정 모 씨의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원고에게 총 1억 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이로써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5년 만에 뒤집혔다.

정 씨 유족은 1940∼1942년 일본 이와테(岩手)현의 가마이이제철소에 강제 동원됐다는 고인의 진술을 토대로 2019년 4월 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2021년 정 씨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민법상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 권리행사의 장애사유가 제거된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그동안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에 힘겨운 싸움을 하거나 소를 포기해왔다. 그러다 2012년 5월24일 대법원에서 개인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나왔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확정됐다.

2심에서도 이 같은 대법원 전합의 판단에 근거해 1심과 달리 시효가 남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1부(부장판사 김연화 해덕진 김형작)가 심리한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일본제철 상대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도 1심이 뒤집히는 판결이 나왔다.

박 부장판사는 일본제철에 사망한 강제동원 피해자 민 모 씨의 유족들에게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소멸시효가 지났단 이유로 패소 판결한 1심 판결을 약 2년 만에 뒤집었다.

정 씨 유가족을 대리한 전범진 변호사는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나 "2심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렸다"며 "상고심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 씨 유가족을 대리한 이상희 변호사는 "전원합의체 판결 한참 뒤에 선고가 나는 바람에 많은 피해자이 돌아가셨고,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피해 내역을 직접적인 육성으로 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일본제철도 그 허점을 이용해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주장을 했는데 각 제철소에서 일하신 분들이 남겨놓으신 자료들, 이춘식 할아버지 판결에서 법원이 인정한 자료들을 통해 불법 사실이 인정됐다"고 밝혔다.

소송을 주도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지난 7월 20일 이후에도 추가판결이 있다. 계속해서 일본제철의 강제동원 관련 청구서가 쌓이고 있다"며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는 해결을 위해서 판결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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