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규명 해달라" 하미학살 피해자들 패소…"너무 실망스러워"(종합)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각하에 소송…법원 "외국 사건 대상 아냐
응우옌티탄 "굉장히 유감…한국 정부 진실 규명 거부 이해할 수 없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제55회 전원위원회에서 방청인단들이 하미학살 사건 조사 개시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하미 사건은 1968년 2월24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하미 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135명의 주민들이 희생됐다. 2023.5.24/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베트남전(戰) 하미학살 사건의 피해자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 각하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25일 하미학살 사건 피해자·유가족 등 5명이 진화위를 상대로 낸 각하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은 항일 독립운동, 반민주·반인권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폭력, 학살, 의문사 등을 조사해 왜곡·은폐된 진실을 밝혀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고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입법 취지도 대한민국 국민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실 규명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사정리법 2조의 진실규명 조사 대상에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건 법의 목적이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신청이 과거사정리법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진실규명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의 주장에 의하면 진실규명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영토적·인적 한계로 인해 조사나 진실규명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외교적 갈등 등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면 과거사정리법상 진실규명을 거치지 않아도 대한민국에 권리구제를 신청할 방법이 많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의 각하 처분을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미학살 사건 피해자·유가족 응우옌티탄(67) 등 5명은 2022년 4월 진실화해위에 하미 사건의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과거사정리법은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전쟁 시 발생한 사건으로까지 확대 적용되지 않는다"며 2023년 5월 각하 처분했다. 피해자들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하미학살은 베트남전쟁 중인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주둔한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이 주둔지 인근 하미마을에서 민간인 150여 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날 선고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응우옌티탄은 화상 연결을 통해 "오늘 선고 결과가 너무도 슬프다"며 "이번 선고는 굉장히 유감이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너무 실망했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며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은 전 세계인들이 다 아는 전쟁 범죄인데도,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진실규명 거부하는 것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응우옌티탄을 대리한 김남주 변호사는 "법원은 피해자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배상받을 수 있으므로 다른 구제 방법이 있어서 굳이 과거사정리법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고 이유를 댔다"며 "베트남에서 어렵게 전쟁고아로 살아서 노인이 된 피해자가 대한민국 법원에 소송을 내는 건 매우 어렵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가해국의 법정에 와서 이길 수 있으면 한번 소송을 내보라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롱하는 이유를 대면서 패소 판결을 내린 것에 매우 유감"이라며 "사법부가 좀 더 진지하고 깊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