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별개 사건으로 구속됐어도 국선 변호인 조력받아야"…판례 변경

"피고인에게는 모두 방어권 제약되는 '구금 상태'일 뿐"
"형사 절차서 침해될 수 있는 인권보장 입법 목적 구현"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2024.5.2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재판 중인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으로 인해 구속된 피고인에게도 국선변호인을 반드시 선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필요적 국선변호인 선정 사유인 '구속'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3일 상해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20년 6월 인천 남동구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서 B 씨를 아무 이유 없이 할퀴고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소 시점은 2020년 12월이었는데 A 씨가 같은 해 9월 다른 건조물침입죄 사건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면서 A 씨는 구금 상태에서 재판받게 됐다. 건조물침입죄 사건의 판결은 2021년 3월 확정됐다.

A 씨는 1심에서 '빈곤 기타 사유'를 이유로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2심 재판 역시 국선변호인 없이 이뤄졌다.

1심과 2심은 모두 A 씨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 A 씨는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지 않은 재판이어서 위법하다"며 상고했다.

대법원은 2009년 2월 형사소송법 33조 1항의 '피고인이 구속된 때'는 "피고인이 해당 형사사건에서 구속돼 재판받는 경우를 의미하고 피고인이 별건으로 구속돼 있거나 다른 형사사건에서 유죄로 확정돼 수형 중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날 대법원 다수 의견(10명)은 "33조 1항의 '피고인이 구속된 때'는 피고인이 해당 형사사건에서 구속돼 재판받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이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되거나 다른 형사사건의 유죄판결 확정으로 구금 상태에 있는 경우도 포괄한다"고 판례를 변경했다.

형 집행이나 재판 중인 사건 또는 별도 사건에서 구속되는 것이 피고인 입장에서 방어권이 제약되는 '구금 상태'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수 의견은 "구금 상태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제약이나 사회와의 단절 등으로 국가의 형벌권 행사에 대한 피고인의 방어권이 크게 제약되고 제약된 방어력의 보충을 위해 국선변호인의 선정이 요청되는 정도는 구금 상태의 이유나 상황과 관계없이 동일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신체구속을 당한 사람이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등 헌법 규정 취지와 정신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도록 하면서 형사절차에서 침해될 수 있는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입법 목적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원·노태악·신숙희 대법관은 원심판결을 파기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종전 판례는 유지해야 한다고 별개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 사건 조항이 명시적으로 구속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음에도 별건으로 구속되거나 형 집행 중인 구금 상태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 문언 및 체계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입법자의 의사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구금으로 방어권이 취약한 상태에 놓인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