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어머니 주삿바늘 빼 숨지게 한 딸 고의살인일까[세상의모든판결]

어머니 연명치료 중단 동의, 의료진 추가 검사 통보하자 주삿바늘 빼
1심 "'온전한 생명' 침해는 아냐" 존속살해 무죄, 과실치사만 유죄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 2022년 11월 12일 새벽, A 씨는 심부전과 대동맥판막협착증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B 씨(당시 85세) 병실에 들어갔다.

요양보호사 경력이 있었던 A 씨는 어머니에게 부착돼 있던 인퓨전 펌프(일정한 약의 약물이 투여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 전원을 끄고, 주삿바늘도 모두 뽑았다. 환자의 상태에 변동이 생길 시 알람이 울리는 '페이션트 모니터'의 전원도 꺼버렸다.

B 씨의 숨소리가 이상해졌지만 A 씨는 의료진을 부르지 않았고, 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날 새벽 3시 10분, B 씨는 사망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약 1년 동안 재판을 받았다. 1심의 결론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 인정된 혐의는 '과실치사'였다.

◇1심 재판부 "살해 증명 안 됐다" 과실치사 혐의만 인정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A 씨를 기소할 때 적용한 혐의는 '존속살해'였다.

검찰은 A 씨가 의료진들에 대한 불만과 인퓨전 펌프의 소리 등으로 상당히 예민해진 상황에서 살해의 고의를 가지고 어머니에게 부착된 의료기기들을 껐다고 봤다.

A 씨는 앞서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을 연장하는 치료인 심폐소생술, 신장 투석 등을 실시하지 않는 내용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B 씨의 병동을 옮기면서 주치의가 변경되고, 변경된 주치의는 A 씨에게 B 씨의 추가 혈액검사가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A 씨는 "내일 퇴원할 테니 치료를 중단하라"고 항의했다. 또 사건 전날 인퓨전 펌프 오작동 알람이 계속 울리자 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항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올해 1월 "A 씨가 피해자를 살해하였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보고 존속살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임종기에 접어들었고 연명치료 중단에도 동의했음에도 의료진이 무의미한 혈액검사 등을 계속하고, 인퓨전 펌프의 잦은 고장 등으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피해자에 대한 혈액검사 이전에 피해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 내지 퇴원시키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주삿바늘 등을 모두 뽑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의 행동이 유기의 고의에 해당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피해자의 '온전한 생명'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고의에까지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1심 "'과실'로 피해자 사망케 해"…서울고법, 2심 진행 중

결과적으로 1심 재판부는 A 씨의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건 발생 이전 의료진으로부터 노모인 피해자의 현재 상황상 퇴원할 수 없음을 명확히 확인했음에도 피해자를 다른 병원에 전원 내지 퇴원시키겠다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피해자의 생명 유지를 위해 투약 중이던 약의 주삿바늘을 모두 뽑고 의료진에게 피해자의 상태를 알릴 수 있는 페이션트 모니터마저 뽑아버리는 '과실'로써 피해자의 상황이 악화되게 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주삿바늘을 뽑은 A 씨의 행동을 고의가 아닌 과실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시인하고 있고,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이미 임종기에 접어들었으며 의료진 역시 피해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A 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판결 이후 법조계에서는 해당 판결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온다.

한 현직 판사는 "판결 내용 중 '온전한 생명'이라는 단어가 가장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병이 깊거나 여명이 많이 남지 않았다면 그 생명은 '온전하지 않은 것'이냐"며 "생명의 가치에 차등을 두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직접 주삿바늘을 뽑은 행위를 과실로 볼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위독해진 것을 임종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지,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를 임종기로 판단할지 여부도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봤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2심 재판부는 오는 6월 두 번째 공판기일을 연다. A 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아직 진행 중이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