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대 '070'→'010'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운영 가담 외국인들 징역형
법원,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돼 다수 피해자 발생
범죄단체가입·활동 혐의는 '무죄'…"조직활동이라는 증거 부족"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보이스피싱 범행을 위해 해외에서 온 전화(070)를 국내에서 온 것(010)처럼 변작하는 중계기를 운영한 외국인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11단독 서보민 판사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태국 국적의 A 씨(27)와 B 씨(37)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취업 활동을 할 수 없는 체류자격으로 입국해 일당 12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중계기 관리와 관련해 잡다한 업무를 맡은 중국 국적의 왕 모 씨(37·남)에게는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행은 조직적으로 진화해 콜센터는 해외에서 운영하면서 전화번호를 변작하는 중계기는 국내에 두고 운영하는 행태를 보인다.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는 유심칩 여러 개를 장착해 휴대전화 발신번호를 조작할 수 있는 장치다. 대다수 사람들은 일반 전화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만 국제 전화번호나 인터넷 전화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흔히 이용하는 수법이다.
A 씨와 B 씨는 2023년 10월 대화명 '골드'(GOLD)라고 불리는 중국인 총책 전 모 씨와 공모해 USB형 중계기와 공유기 등을 설치하거나 여러 대의 휴대전화와 무선 라우터, 유심칩 등을 연결하고 관리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운영한 중계기를 통해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발신한 전화가 국내 불특정 다수 피해자에게 연결됐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국내 다수 거주자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하고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라', '저금리로 대환 대출을 해줄 수 있다' 등으로 거짓말을 해 거액을 편취했다.
재판부는 "A 씨와 B 씨는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필수적인 중계기 관리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이 사건 범행을 주도하는 지위에 있지는 않았던 점, 국내에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와 B 씨, 단순 잡무를 한 왕 씨의 범죄단체가입 및 활동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피고인들이 총책 '골드'나 다른 간부급 조직원의 지시를 받고 중계기를 관리해 보이스피싱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은 인정되지만 피고인들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조직에 소속돼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범죄집단의 조직, 구성원, 구체적 지휘 관계, 활동 내역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피고인들이 (중계기 관리) 행위 당시 범죄집단에 가입해 활동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은 지난달 20일 A 씨 등을 포함해 국내에서 1700대에 달하는 중계기를 운영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일당 21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모두 외국인으로 국적은 중국과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이티 등 다양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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