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아이티 등 번호 조작 21명 전원 외국인…지시는 텔레그램으로만
보이스피싱 번호 조작 일당 기소…점조직으로 운영
대화명 수시 변경 내역 삭제…총책 '골드'는 중국에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해외 발신번호(070)를 국내 번호(010)로 조작해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콜센터 조직에 판매한 보이스피싱 중계기 운영 조직 일당 21명은 모두 외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총책은 일명 '골드'(GOLD)로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으로 국내 조직원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모집해 텔레그램으로 지시하는 등 점조직으로 운영해 왔다. 그래서 조직원이 서로 알지 못하고 중국에 있는 총책과 일부 간부급의 신원도 알 수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20일 구속 기소한 21명의 국적은 △중국(6명) △태국(11명) △남아프리카공화국(3명) △아이티(1명) 등 다양했다. 그중 여성 8명은 모두 태국 국적의 20~30대였다.
합수단은 "대부분 여행비자로 들어왔다 불법 체류 상태가 된 후 다른 일을 하다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 대부분 불법 체류자…수사 강화되자 다국적 모집
'골드'는 조직 구성 초기에 주로 한국계 중국인을 모집했지만 보이스피싱 수사가 강화되자 숙소 제공과 고액 수당 등을 제시하는 글을 올려 태국·남아공 등 국적의 불법 체류자나 난민 신청자를 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합수단은 "수당을 많이 주는 알바라고 생각해 지인에게 소개한 경우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모집된 집단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서 "(총책이) 처음 모집할 땐 전자장비 운반이나 관리 등의 업무를 설명했다가 구체적으로 지시할 때에야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주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 중계기 운영하며 월 수억 이익…수법 치밀
이들은 포트형, USB형, 휴대전화형(CMC기능) 등 세 가지 유형의 중계기로 중국 소재 콜센터에서 피해자에게 거는 전화번호(070)를 국내 번호(010)로 변작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중계기 회선 개당 약 90만 원의 이익을 거두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월평균 500회선을 판매해 월 4억 5000만 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합수단이 중계기를 압수할 당시 이들이 사용한 회선은 784회선으로 이들이 11개월가량 얻은 총수익은 5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조직원 1명이 숙소와 중계소 1~2개실을 담당했고 중계소에는 음식 배달과 흡연, 소란 금지 등 행동강령도 구체적으로 하달됐다. 이들은 텔레그램으로만 지시하고 대화 내용은 주기적으로 삭제했으며 간부급은 대화명을 수시로 변경하는 등 치밀한 수법을 썼다.
일당은 가담 기간에 따라 '부품배달'→'유심보관소 또는 중계기 관리'→ '부품보관소 관리' 순으로 중요 업무를 담당했고 업무에 따라 매주 50만~100만 원의 수당을 받았다. 중계기 관리도 '부품관리-부품배달-부품조립·중계소 운영'으로 역할을 나누는 등 분업화했다.
초기에는 수당과 원룸 임차료를 계좌로 지급하다가 조직원들이 순차적으로 검거되자 추적을 피하기 위해 '던지기' 수법으로 수당을 건넸다. '던지기' 수법은 우편함과 분전함 등에 물건을 두면 수취자가 찾아가는 방식이다.
다른 조직원이 붙잡혔다는 소식에 일부 조직원이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도피했지만 합수단은 최종 통화 내역과 카드사용 내역, 택시이용 내역 등을 분석해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합수단은 '골드'를 포함, 조직·자금 관리책 등 중국 소재 간부의 신원을 특정해 추적하고 있다. 총책을 검거하면 콜센터 조직까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합수단은 2022년 7월 29일 출범 이후 433명을 입건하고 150명을 구속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은 1만 8902건으로 2019년(3만 7667건)의 절반 아래로 줄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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