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주가조작 총책 "3번의 밀항 시도" 치밀했던 '90일 도주극'
익명의 신고 전화에 덜미…10여년 전부터 전문 시세조종꾼으로 활동
검찰 "밀항 브로커 해외 도주, 추가 공범·조직원 등 계속 추적중"
- 홍유진 기자, 서상혁 기자
(서울=뉴스1) 홍유진 서상혁 기자 = 영풍제지 주가조작을 주도한 총책 이모씨(54)가 3개월간 모텔을 옮겨가며 도피행각을 벌인 끝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베트남 밀항을 시도하던 중 검거된 이씨는 전문 '시세조종꾼'으로 10여년간 활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10월17일부터 경기도 가평·포천, 강원도 속초 일대 모텔 등을 전전하다 도주 두 달째인 12월쯤 밀항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이씨는 지난달 18일 밀항 브로커와 만나 목포항, 여수 국동항으로 이동했으나 기상 악화로 번번이 실패했다.
이씨는 3수 끝에 베트남 밀항선에 올라탔지만 출항 직후 익명의 신고에 덜미를 잡혔다. 처음부터 베트남에 가려던 건 아니었지만 급한 대로 올라탄 배의 목적지가 베트남행이었다고 한다.
무려 6600억원의 시세조종 차익을 거뒀지만 체포 당시 그의 수중에는 8800달러(약 1170만원)가 전부였다. 가방에는 밀항 브로커와 통화할 수 있는 위성 전화기와 지루함을 달랠 태블릿 PC도 들어있었다.
특히 이씨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던 변호사 A씨로부터 도피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A씨는 이씨의 휴대전화 2대를 건네받아 전원을 끈 채 타지에 열흘 넘게 보관해 위치 추적을 방해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가 시작되자 이씨를 자신의 차에 태워 이동시키고, 이씨의 운전기사로부터 현금 수억원을 받은 뒤 수표로 바꿔 도주자금을 챙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공범의 변호인 중 한 명이 검찰 조사에 동석해 수사 관련 내용을 A씨에게 실시간으로 유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은 해당 변호인과 A씨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개시를 신청한 상태다.
검찰 조사 결과 이씨는 10여년 전부터 전문 '시세조종꾼'으로 활동해 온 인물로 밝혀졌다. 이씨는 예전부터 함께 근무했던 지인을 비롯해 가족까지 끌어들여 주가조작 팀을 맨 처음 꾸렸다.
검찰은 주가조작에 가담한 추가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해외로 도주한 조직원, 체포영장이 발부된 조직원, 인적 사항이 확인되지 않은 조직원 등을 계속 추적 중이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4억8000만원을 받고 도피를 도운 밀항 브로커는 사건 직후 해외로 도주해 잠적한 상태다. 밀항 관련 사건은 현재 제주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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