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 승계' 이재용, 19개 혐의 '무죄'…검찰 항소 검토(종합2보)
법원 "범죄 증명 없어…합병 목적 부당하다 볼 수 없다"
이재용 측 "합병·회계처리 적법함 확인"…檢 항소 검토
- 정윤미 기자, 박승주 기자, 이세현 기자,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박승주 이세현 윤다정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56)이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 3년5개월만에 무죄를 받았다.
이 회장 승계작업을 주도했다는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측과 최소비용으로 그룹 내 지배력 강화 를 위해 제일모직과 부당합병에 공모한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삼정회계법인 소속 관계자 13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5일 오후 이 회장 등 14명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선고기일을 열고 검찰이 제시한 23개 혐의에 대해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된 지 8년5개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로 이 사건이 터진 지 7년여만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이 사건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적 목적이 존재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 이재용이 합병 추진 과정에서 위법 부당하게 피고인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았다"며 "삼성물산 합병TF경영진이사회(이사회)는 악화된 경영 상황을 검토하고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 및 업무상배임 등 19개 혐의 '무죄'
이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상 거짓공시 및 분식회계 등 크게 3가지로 분류되며 세부적으로 19개에 달한다.
검찰은 미전실이 이 회장의 승계계획안으로 불리는 '프로젝트-G' 문건에 따라 2015년 이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흡수합병했다고 봤다.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2대 주주로 4.06%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두 회사 합병 거래 단계마다 삼성물산 투자자들을 상대로 △거짓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계열사인 삼성증권 PB조직 동원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각종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합병 목적·경과 및 비율·시점이 부당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위계 내지 부정한 수단 등 사용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거짓 기재나 은폐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투자자에게 오해를 유발할 만한 부정한 수단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등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세조종 관련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이 회장 등에게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과 물산 주주들에게 시가 이상으로 회사 및 주주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었던 기회와 이익을 상실하는 손해가 발생했다면서 업무상 임무를 위배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무엇보다 삼성물산 이사는 물산의 사무처리자로서 물산(회사)에 대한 임무를 부담하므로 주주에 대한 임무를 내용으로 하는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다"면서 "뿐만 아니라 합병 필요성, 합병 비율 등 공소장 기재 개별 임무 위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주장하는 손해는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해 그 자체로 업무상 배임죄 손해가 될 수 없다"며 "달리 '객관적·개연적으로 기대되는 이익 상실'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짚었다.
아울러 이 회장 등은 외부감사법을 위반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바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모회사인 제일모직 주가 악영향을 우려해 삼바의 2014년 회계연도 공시 중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와 다국적 제약사 바이오젠 사이 합작계약의 주요 사항(콜옵션 등)을 은폐했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 만으로는 2014년 당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실질적인 권리가 아니어서 지배력 판단이 고려되지 않으며 회계 기준에 비추어 반드시 공시돼야 하는 정보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삼바의 주석 공시가 회계기준 위반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없게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5년 합병 여파로 삼바가 자본잠식 위험에 처하자 회계처리 방식을 '지분법'으로 바꿔 기업 자산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과대 계상 규모는 4조5436억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2015회계연도에 바이오젠 콜옵션이 실질적 권리가 돼 지배력 판단에 반영돼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으로 지배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삼바의 2015회계연도 분식회계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무죄 선고 뒤에도 입 굳게 다문 이재용…檢, 항소 여부 검토
이 회장은 이날 오후 1시40분경 입을 굳게 다문 채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서울중앙지법 서관 출입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3년 5개월 만에 1심 선고를 앞둔 심경이 어떠냐"는 등 취재진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
이 회장은 다소 경직되고 긴장한 표정으로 50분이 넘는 선고 공판 동안 피고인석을 지키다가 '무죄'가 선고되자 비로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고를 마치고 이 회장은 '무죄 받은 소감', '등기이사 복귀 계획', '국민께 하고 싶은 말' 등 취재진 질문에도 역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짧게 소회를 밝혔다.
검찰은 이날 판결에 대해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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