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실체 사라져"…임종헌 '유죄' 선고한 재판부의 뼈있는 한마디

5년 재판 끝 징역형 집유 선고 "국민신뢰 해하는 중대범죄"
"300쪽 공소사실 중 실체 사라지고 몇개 혐의만 남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와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공동취재) 2023.11.2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5·사법연수원 16기)의 1심 재판이 끝나면서 약 5년간 이어졌던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이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사건의 핵심이었던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대해 "실체가 사라졌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란 해석이다.

◇임종헌, 사법행정권 남용 1심 징역형 집유…"국민 신뢰 해할 중대 범죄"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부장판사 김현순 조승우 방윤섭)는 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관련 사건 및 홍일표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등 특정 국회의원 사건의 검토를 심의관에게 지시한 것과 현금성 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공보관실 예산을 불법으로 편성해 다른 용도로 유용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의 검토 지시는 사법부 독립뿐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할 수 있는 중대 범죄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했다. 또 예산 유용 혐의에 대해서도 "국가 재정을 축내고 피해를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밝혔다.

◇재판부 "사법농단, 재판거래 실체 사라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강제징용 재판 및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개입,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로 법관 인사에 부당한 영향을 끼친 혐의 등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초기에 제기됐던 대부분 혐의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유·무죄 판단을 마친 후 양형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들이 투입돼 수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300쪽이 넘는 분량의 공소사실로 정리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이미 대부분의 실체가 사라진 채 공소장에는 '재판거래 등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나 목적으로 심의관들에게 부적절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취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들만이 주로 남았다"며 "이러한 혐의사실들도 본 판결에서 보듯 대부분 범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유죄로 인정된 범행들도 대부분 피고인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들이거나 예산에 관한 범행들에 지나지 않았다"며 "피고인은 유죄로 판명된 범죄보다 몇 배나 더 많았던 범행들에 관한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이례적 표현…재판부, 강한 의사 보인 것"

재판부가 판결에서 혐의에 대해 이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평가다.

한 판사는 "'실체가 사라졌다'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판결문에서 쓰지 않는 표현"이라며 "재판부에서 결국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는 없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른 부장판사는 "300장이나되는 공소장에도 불구하고, 미미한 몇가지 범행만이 인정됐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가 선고하면서 이같은 표현을 쓴 것은 매우 강한 의사를 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