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2·12쿠데타 맞선 '정선엽 병장' 죽음 "국가가 사실 은폐해"

유족 4명에 대해 각 2000만원 위자료 인정
유족 "전사자 예우, 국가의 소송 태도 실망해"

1979년 12·12 사태 당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잇는 지하벙커에서 초병 근무를 서다 전두환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정선엽 병장의 모교인 광주 동신고에서 지난해 12월12일 정 병장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사진은 기념식수 모습. 2023.12.12/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법원이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벙커를 사수하다 사망한 고(故) 정선엽 병장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2단독 홍주현 판사는 5일 오후 2시 고(故) 정선엽 병장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심 재판에서 피고인 정부가 원고 4인에 대해 각 2000만원,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정 병장은 12.12 사태 당시 국방부 지하 B-2 벙커를 지키는 초병으로 근무하다 쿠데타 측인 공수부대원들에게 사살됐다. 사망 직후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다며 '순직' 처리됐지만,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위법한 무장해제에 대항하다 살해'당한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진상규명위의 권고를 받은 국방부가 이를 인정해 '전사'로 판명받았다. 이후 유족들은 국가가 정 병장의 죽음을 은폐했다며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는 정 병장의 4형제가 참가했다.

보통 민사 사건의 경우 선고 시 그 이유를 밝히지 않지만, 이날 홍 판사는 재판의 특수성을 고려한 듯 꽤 상세히 선고 이유를 밝혔다.

홍 판사는 "망인이 국방부 벙커에서 반란군 무장해제 대항하다 살해돼 전사로 사망 처리돼야 함에도 계엄군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사망한 당시 순직으로 처리하여 망인 사망 왜곡하고 은폐한 사실이 인정된다"라며 국가의 위법행위로 고인의 생명의 자유, 유족들의 명예가 침해됐다고 밝혔다.

재판에서 정부 측은 정 병장의 유족들이 권리침해를 인지하고서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홍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2년 진상규명위의 발표 전까지 유족들이 정 병장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정 병장의 동생 정규상씨(65)는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실망스럽다"며 판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소멸시효를 두고 국가와 법정 공방을 벌인 것에 대해서도 "자기네들이 잘못해 놓고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식"이라며 비판했다.

유족들을 대리한 김정민 변호사는 "국가배상법의 문제로 사망 자체에 책임을 구하지 못해서 위자료만 청구했지만 위자료 인정 금액이 적지 않다”며 "사법부가 군사 반란에 대해 엄벌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12.12 당시 사망한 군인들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라며 후속할 수 있는 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potgus@news1.kr